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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끈적한 봄, 서리 내린 폐

해부실 시계 초침이, 혼자서만 다른 계절을 건너고 있었다. 위층 연회장의 음악은 이미 끊겼다. 그런데 지하 이 방 안에는, 아직 봄이 흘렀다. 피가 굳어 가는 속도대로 움직이는, 끈적한 봄. 하급 관리의 시신에서 서리가 피어올랐다. 얼음처럼 차가운 쇠판이 등을 잡아당기자, 회색 피부 위로 희끗한 김이 얇게 퍼졌다. 장갑을 뚫고 들어온 냉기가 연서경의 손목뼈까지 치고 올라왔다. 체온은 빠르게 밀려났고, 온기는 이미 죽은 쪽 편에 서 있었다. 연서경은 시신의 어깨를 반듯이 맞췄다. 비틀려 돌아간 목을 곧게 펴고, 흘러내린 팔을 다시 몸통 옆에 가지런히 붙였다. 번호가 적힌 접시에서 갈비뼈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부검대 옆에 규칙적으로 세워 둔다. 흰뼈가 금속 위에서 서로 스치며 마른 소리를 냈다. 피와 세척액이 섞인 물이 부검대 모서리에서 똑똑 떨어졌다. 붉은 물이 돌바닥의 홈을 따라 느리게 흘렀다. 질척한 소리가 바닥을 스치며 미끄러졌다. 냄새는 눅눅했다. 젖은 흙과 잘게 찢은 풀잎, 오래된 약초를 한데 끓인 듯한 향. 피 속에 섞인 에메랄드 응고물이, 비 온 뒤 텃밭을 뒤집어엎은 듯한 냄새를 피워 올렸다. 문가 쪽에서 짧은 혀 차는 소리가 났다. "검시관님." 출입구에 기댄 형조 조사관이 은장 시계를 손가락 사이에 걸었다. 금속 뚜껑이 딸깍, 딸깍. 짧은 숨처럼 열렸다 닫혔다. "연회장은 아직 난리입니다. 결론만 주시죠. 오래 끌 일 아니잖습니까." 연서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메스를 집어 시신의 흉곽 안쪽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양폐 사이, 벌어진 흉골 아래. 이미 초동 검시에서 한 번 갈라 놓은 자리였다. 다른 검시관이 남긴 거친 절개선을 가로질러, 자신의 선을 다시 긋는다. 쓱, 금속이 갈라진 폐 조직에 닿자 사각거리는 감촉이 장갑을 타고 올라왔다. 마른 진흙을 손으로 으깨는 것 같은 질감. 부서지는 느낌이 손목까지 번졌다. 연서경은 양폐의 앞·중·뒤 부위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눌러 보았다. 탄력이 죽은 부분과 남은 부분의 경계가, 손끝에서 미세하게 갈라졌다. 옆 트레이 위 초동 기록들이 시야 가장자리에서 흔들렸다. '우발적 계절 마력 폭주 추정.' '폐 조직 전반 괴사.' '마력 제어 팔찌 이상 없음.' 그녀는 종이뭉치를 손등으로 밀어냈다. 바스락,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짧게 튀었다. 새 종이를 꺼내 붉은 펜을 쥐었다. 좌폐 상엽, 중엽, 하엽. 우폐 상엽, 중엽, 하엽. 각 엽의 단면을 간단히 그려 넣고, 괴사 부위를 작은 사각형으로 표시했다. 에메랄드 응고가 뭉친 구역은 둥근 원으로 둘렀다. 붉은 잉크와 녹색 얼룩이 묘하게 어긋났다. "폭주 징후도 있고, 폐 괴사도 뚜렷하죠." 형조 조사관이 시계를 탁 닫았다. "이 정도면 결론 내릴 자료는 충분합니다, 검시관." 연서경의 손이 멈췄다. 붉은 잉크 점 한 개 위로 시선이 얇게 내려앉았다. "죽은 자는 거짓말 못 합니다." 목소리가 차분하게 떨어졌다. "거짓말하는 건 늘 산 사람들 기록 쪽이죠." 형조 조사관의 입술 모서리가 삐딱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 말, 우리 형조가 거짓말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만." "기록을 서두르시면," 연서경이 폐 옆면을 가리켰다. "책임은 형조로 가겠죠. 아직 이 사람 가슴 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폭주'라 쓰면." 문틈 사이로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반쯤 열린 해부실 문 앞에 근위병 둘이 서성이며 안을 기웃거렸다. 철제 갑옷이 부딪히는 금속음이 느리게 이어졌다. "피비린내 때문에 귀족들이 난립니다." 앞선 근위병이 고개만 내밀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문 닫으십시오." 연서경이 말을 끊었다. 근위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검시 중엔 문 닫습니다. 기본입니다." 연서경이 장갑 낀 손등으로 문을 짧게 가리켰다. "피 냄새가 싫으면 황궁 구조를 바꾸라 하시죠. 죽은 자는 제 발로 못 나갑니다." 형조 조사관이 가짜 기침을 냈다. "검시관님, 윗선에서 이미—" 문 밖, 복도 끝 어딘가에서 의전관의 날 선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검시를 더 미룰 수 없다고 전해요! 연회 일정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근위병이 눈치를 보다가 문을 닫았다. 두꺼운 나무가 소음과 체면을 한 번에 바깥으로 밀어냈다. 해부실 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피와 세척약, 말린 약초 냄새가 선명해졌다. 연서경은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결론이 급하시면, 그만큼 시간을 주셔야죠. '우발적'이라 적으시려면, 적어도 우발적으로 보기 힘든 증거가 없는지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형조 조사관의 손가락이 시계 뚜껑 위에서 한 번 튕기다 멈췄다. 초침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바늘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위험 표시선 쪽으로 기울어 가는 속도. "… 알겠습니다. 서두르진 않겠습니다." 그가 한 발 물러섰다. "다만, 너무 깊이 파헤치지는 맙시다. 유족도 있고, 체면도 있으니까." 유족. 체면. 연서경의 시선이 시신의 닫힌 눈꺼풀을 스쳐 지나갔다. 눈 밑에 번진 멍이 아이리스 꽃잎처럼 퍼져 있었다. "시신에 체면은 없습니다." 마른 음성이 흘렀다. "남는 건 기록뿐이죠." *** 상반신을 기도 쪽으로 기울이자, 고드름 같은 냉기가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연서경의 숨이 짧게 들썩였다. 흰 입김이 가늘게 번져 나갔다 사라졌다. 메스 끝이 기도 주변 근육을 따라 미끄러졌다. 가느다란 근섬유들이 칼날을 밀어내듯 미세하게 버텼다. 힘을 조금 더 주자, 저항이 깨지는 감각이 손목으로 전달됐다. '목이…' 어딘가에서 끊어진 숨소리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답답해… 더 아래… 이번에는…' 장갑 속 손가락 관절이 굳어 갔다. 연서경은 고개를 더 숙였다. 시신의 턱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다른 손은 갈비뼈 아래 깊숙이 밀어 넣었다. 심장과 기도 사이 어둑한 틈.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을 더듬듯 손가락이 움직였다. 단단한 것이 손끝에 걸렸다. 살과는 전혀 다른 밀도. 작은 구형. 마치 누군가 여기에 몰래 숨겨 둔 돌알 같다. 연서경이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메스를 쥔 손이, 구형 조직 주변을 원을 그리듯 돌았다. 근섬유를 따라 타원형으로 잘라내며 얇은 층을 하나씩 벗겨냈다. 짧은 '딱' 소리가 손목을 때렸다. 마력에 닿은 조직이 튀어나가는 순간,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기도 안쪽에서 피 섞인 응고물이 툭 튀어나왔다. 검붉은 덩어리 사이로 은빛이 번쩍, 번개처럼 갈라졌다. 형조 조사관이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부검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팔짱을 끼었다. "더 훼손하면, 유족이—" 쿵, 문이 거칠게 열렸다. 철 갑옷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다른 근위병이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형조 나으리!" 목이 갈라진 목소리였다. "좌의정 각하 쪽에서 조기 결론을 요구하십니다. 검시는… 그, 여기까지만 하고 시신 봉할 준비를—" 연서경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메스는 이미 마지막 근섬유를 끊고 있었다. 구형 조직이 주변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발코니에 있던 그분이 사라졌다더군요." 새 근위병이 낮게 말을 이었다. "위에서들 시선이… 영 좋지는 않습니다." 해부실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발코니. 사라진 인물.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 "비밀스러운 죽음이 제일 더러운 소문을 부릅니다." 연서경이 차분히 말했다. "지금 덮으면, 황궁 전체가 그 소문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겠죠." 근위병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형조 조사관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검시관님, 그 말이 우리를 협박하는 건 아니길 바랍니다." "협박이라기보다, 예상에 가깝죠." 연서경은 집게를 잡았다. 메스를 내려놓고 손을 더 깊이 넣어 구형 조직을 감쌌다. "이 목소리를 덮어 버리면, 다음에 찢기는 건 형조 기록일 테니까요." "목소리라니." 조사관이 코웃음을 쳤다. "미신은 기록에 안 남기는 게—" 집게가 흉곽 안에서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피가 조금 더 흘러내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방울이 또각또각 튀었다. 작은 구형 덩어리가 공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에메랄드빛과 은색 파편이 뒤섞인 덩어리. 표면 곳곳에 규칙적으로 박힌 틈과 결절이 얼기설기 빛났다. 형조 조사관의 입술이 굳어지며 말이 목구멍에서 끊겼다. *** "… 저게, 뭡니까." 그가 쥔 시계가 미끄러지는 소리를 냈다. 땀에 젖은 금속이 손바닥에서 미세하게 돌아갔다. 연서경은 구형 덩어리를 조심스레 유리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집게 끝에서 떨어지는 순간, 얇은 금속성 울림이 찰나처럼 튀었다. 말라붙은 자갈 두 개가 서로 부딪히는 듯한 소리. "마력 핵 구조입니다." 연서경이 짧게 말했다. "자연 폭주에서는 이런 형태, 안 나옵니다." 근위병이 가까이 다가오다 피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검시관님, 그 정도면 충분하겠—" "충분한지는, 확인해 봐야 알죠." 연서경이 말을 잘랐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딱딱하게 잠겨 있었다. 그녀는 옆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검대 옆을 지날 때 장갑 속으로 파고들던 냉기가 팔꿈치까지 파고들었다. 돌바닥 틈새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발목을 얼려, 무릎 주변까지 단단히 휘감았다. 책상 위에 펼쳐 둔 자신의 메모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한 장에는 방금 전 하급 관리 폐 구조 도식이 있었고, 다른 장에는 새벽에 그려 둔 강진혁의 흉곽 그림이 있었다. 은빛 파편이 박힌 자리, 괴사한 폐 가장자리, 계절 조직이 굳어 붙은 틈. 연서경은 마력 핵이 놓인 유리 접시를 두 메모 사이에 내려놓았다. 다시 붉은 펜을 들었다. "검시관님." 형조 조사관이 애써 담담한 목소리를 냈다. "사실, 좌의정 각하께서는 이번 사건을 우발적 폭주로 정리하시길—" "우발적으로," 연서경이 펜촉을 종이에 툭 찍었다. "저 정도 층위의 핵 구조가 생겨날 수 있다면, 제 공부가 모자란 쪽이 되겠죠." 에메랄드와 은빛이 교차하는 마력 핵을 확대경 아래로 밀어 넣었다. 렌즈 속에서 색이 더 진하게 살아났다. 푸른 점들이 밤하늘 별처럼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박혀 있었다. 그녀는 백지를 한 장 더 꺼냈다. 확대된 결절 하나하나를 종이 위 점으로 옮겼다. 점과 점을 선으로 이어 바깥층, 중간층, 중심부를 나눴다. 층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선의 방향으로 드러났다. 점이 모이고 선이 얽혔다. 누가 키와 값, 괄호를 맞춰 배열해 놓은 구조를 평면에 펼쳐놓은 듯했다. 겹겹이 쌓아 올린 규칙이 한 줄씩 돌아가며 반복됐다. 연서경의 숨이 잠깐 걸렸다.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펜끝이 선 사이를 더듬듯 움직였다. "이건 넘쳐흐른 자국이 아닙니다." 그녀가 한 패턴을 동그랗게 둘렀다. "줄 맞춰 세운 구조죠. 누가, 이 사람 폐 안에 목적을 가지고 코드를 짠 겁니다." 형조 조사관의 목젖이 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 코드라니요. 마력을, 그런 식으로—" "형조에서 좋아하시는 말로 바꾸면," 연서경이 펜을 내려놓았다. "설계입니다. 사고가 아니라." 이 순간, 마력 핵 안쪽에서 갑자기 빛이 터져 나왔다. *** 확대경 속 에메랄드 점들이 한꺼번에 눈부시게 밝아졌다. 한 줄씩 번갈아 꺼졌다 켜지며, 밤하늘에 그려진 낯선 별자리가 빠르게 뒤집혔다. 쾅, 하는 폭음 대신, 얇고 날카로운 파문이 손등을 때렸다. 건조한 겨울 공기에 정전기가 튄 듯, 따끔거리는 감각이 손가락 위로 흩어졌다. 확대경 유리가 앞으로 튕겨 나가 책상 모서리를 쳤다. 잉크병이 덜컥거리며 넘어질 듯 흔들렸다. 마력 측정 기구에서 삐, 삐, 짧은 전자음이 터져 나왔다. 간격은 일정했다. 규칙적인 시그널. 누군가 시험 삼아 신호를 보내는 듯한 리듬. 시야에 푸른 점들이 잔상으로 남았다. 렌즈 밖 공기에도 점들이 떠다녔다. 수십 개의 점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그림이, 눈꺼풀 안쪽까지 들러붙었다. 해부실 천장 근처에서 낮고 빠른 속삭임이 스쳤다. 여럿의 숨이 겹친 소리. 단어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지친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쉬는 숨이 한곳에 엉겨 붙은 듯했다. 형조 조사관 얼굴이 순식간에 핼쑥해졌다. "이건… 금기 마력입니다." 손이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더 분석했다간, 해부실부터 봉인됩니다. 당장 핵을— 깨야—" "깨시면," 연서경이 차분히 잘랐다. "좌의정 각하가 더 곤란해지시겠죠." "뭐라고요?" "금기 마력이 황궁 안 우발적 사고에 쓰였다는 뜻이 되니까요." 그녀가 측정 기구의 버튼을 눌렀다. 삐— 하는 소리가 딱 끊겼다. "설계라 쓰면, 적어도 설계자를 찾는 쪽으로 책임이 흘러갑니다." 형조 조사관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입술이 여러 번 열렸다 닫혔다. "그 손, 멈춰." 해부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쉰 목소리가 겹쳤다. 무거운 발소리가 돌바닥을 꾹꾹 밟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강진혁이었다. *** 눈 내린 숲 냄새가 같이 들어왔다. 검은 코트 자락에 붙어 있던 찬 공기, 철 녹냄, 침엽수의 매운 향. 해부실의 피비린내 위로 차갑게 도약했다. 부츠 밑창이 돌바닥을 사각사각 긁었다. 부검대를 스쳐 책상 앞으로 다가오는 동안, 방 안 중심이 조금씩 그의 쪽으로 기울었다. 연서경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집게와 메스를 교차해 마력 핵을 다시 들어 올렸다. 손목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을 제일 먼저 느끼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가죽 장갑 낀 손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힘은 단단했고, 온도는 차가웠다. 압력이 장갑을 뚫고 뼈까지 내려앉았다. "이 이상 파헤치면," 강진혁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대공비라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형조 조사관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보탰다. "대공 전하 말씀이 옳습니다. 보고서에는 마력 폭주와 폐 괴사만… 핵은 언급할 필요가—" "놔 주십시오." 연서경이 붙잡힌 손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강진혁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력 핵, 도식, 그리고 새벽에 그려진 자신의 흉곽 그림. 도면 위 은빛 파편 문양을 보는 순간,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이걸 꺼내야," 연서경이 숨을 골랐다. "전하의 죽음도 우발이 아니라 설계였다는 게 드러납니다." 장갑 안에서 그의 손가락 관절이 가볍게 떨렸다. 철제 장식이 없는 생살의 반응이었다. "두렵습니까." 연서경이 고개를 조금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눈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니면 이미 공범이십니까." 근위병 둘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더 차가워졌는데, 온 신경은 한 지점에만 모였다. "이 패턴." 연서경이 붉은 펜으로 마력 핵 도식 한 부분을 가리켰다. "전하 흉곽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짧은 정적이 지나갔다. 계산과 충돌이 동시에 일어나는, 얇은 쉼표 같은 순간. 형조 조사관이 허둥지둥 끼어들었다. "대공 전하, 이런 위험한 말씀은… 좌의정 각하께서도 바라지—" "입 다물어." 강진혁이 또렷하게 말했다. 존댓말이 아니었다. 쉰 목소리였지만, 지하 공기를 한 번에 눌렀다. 형조 조사관이 움찔했다. "전하, 저는 형조의—" "지금부터 하는 검시는 황제의 어명에 따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연서경에게 고정돼 있었다. "좌의정도, 형조도, 나도 책임은 윗분께 넘기면 되지." 형조 조사관의 눈이 커졌다. "어명이라니…" "황제가 붙여준 검시관이잖아." 강진혁 입가에 마른 웃음이 스쳤다. "죽은 자 속을 얼마나 헤집든, 우린 '명령에 따랐다'고 쓰면 그만이야." 말은 보호였고 동시에 냉소였다. 자기 목이 이미 판 위에 올라와 있다는 걸 아는 사람 특유의 어조. 손목을 쥐고 있던 힘이 서서히 풀렸다. 연서경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집게를 움직였다. 마력 핵을 유리 접시 위 정확한 중심에 내려놓았다. 집게 끝이 접시를 건드리며 짧은 금속음을 냈다. 유리 아래에서 파편이 서로 닿는 소리가 낮게 겹쳤다. "계속 하십시오." 강진혁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 책상 모서리에 몸을 기대고, 도식과 핵 구조를 위에서 내려다봤다. 형조 조사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 그럼 보고서에는, 어떻게…" "사계절 마력 실험." 연서경이 천천히 단어를 꺼냈다. "형조에서 쓰는 말로 가장 가깝다면 그 정도겠죠. 폭주가 아니라." 형조 조사관의 얼굴빛이 다시 한 번 하얗게 질렸다. 사계절. 황실 서고 깊은 서랍 속에서나 겨우 속삭이는 금기어. "그 말을 보고서에 쓰면—" "쓰시라는 게 아닙니다." 연서경이 담담하게 잘랐다. "지금 보고 계신 걸 그대로 적으시라는 겁니다. 자연 폭주에서 나올 수 없는 규칙성과 반복 패턴. 핵 구조의 층위 차. 조작된 마력 등록부." "조작이라뇨!" 조사관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곧 보시게 됩니다." 연서경의 대답은 짧았다. *** 충격파의 여파가 가라앉자, 해부실 난방 장치 불꽃이 부러진 심지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벽에 박힌 작은 화염이 바람 없는 곳에서 꺼져 가는 초처럼 파르르 떨렸다. 집게를 쥔 연서경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흔들렸다. 손등 힘줄이 얇게 솟았다 가라앉았다. 관자놀이 주변에 둔한 통증이 밀려왔다. 몇 시간째 이어진 냉기와 집중이, 뒤늦게 몸을 물어뜯는 듯했다. 그녀는 떨림을 감추려는 듯 부검대 가장자리에 손바닥을 힘껏 눌렀다. 거친 돌 표면이 장갑을 누르며 올라왔다. 그래도 손가락 관절이 한 번씩 희미하게 들썩였다. "이젠 그만하셔도 되겠군요." 형조 조사관이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안도와 조급함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이 이상은 검시관님 몸이 먼저 상하겠습니다. 기록도 좋지만—" 그 말 위로 문이 활짝 열렸다. 문틈 사이로 복도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차가운 냄새와 함께, 위층에서 내려온 웃음과 헛구역질 소리가 얽혀 흘렀다. "밖에서는 벌써," 근위병이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해부실이 피칠갑 지옥이라는 소문이 돕니다. 문을 닫아야— 아니, 그냥 열어두는 게 나으려나… 아무튼, 그만들—" 연서경의 숨이 길게 들이켜졌다. 천천히 내쉬는 숨이 옅은 흰빛으로 번졌다. 책상 위에서 금속이 내려앉는 소리가 탁 하고 울렸다. 곧이어 뚜껑이 돌아가는 마찰음이 짧게 뒤따랐다. 은제 보온병이었다. 강진혁이 책상 한켠에 내려놓았다. 뚜껑이 열리자, 흰 김이 해부실 공기 위로 길게 피어올랐다. 피와 세척약 냄새 사이를 비집고 달큰하면서도 쌉쌀한 약초 향이 스며 들어왔다. 북쪽 산비탈에서 끓여 왔을 것 같은 깊은 향. "… 필요 없습니다." 연서경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도식 위에 고정돼 있었다. "손이 떨리면," 강진혁이 보온병을 그녀 쪽으로 밀었다. "진실도 삐뚤어질 거다." 형조 조사관이 어색하게 웃었다. "대공 전하, 지금은 농담을 하실 때가—" "농담이냐." 강진혁의 시선이 그에게 스쳤다. 눈빛이 짧게 가라앉았다. 형조 조사관이 입을 다물었다. 연서경은 잠시 말이 없었다. 보온병에서 피어난 김이 붉은 펜 위로 얇게 흘렀다. 차가웠던 장갑 안 공기가 향기와 함께 조금씩 밀려났다. 정확한 절개선. 흐트러지지 않는 선. 손끝으로 되돌려야 할 건, 감각이었다. 그녀는 계산을 마쳤다. 부검대에서 손을 떼고 보온병을 집어 들었다. 금속의 차가움이 장갑 너머로 전해졌다. 뚜껑을 더 열자 향이 훨씬 진해졌다. 잔에 옮겨 따르지 않았다. 입을 가까이 가져가 그대로 한 모금 들이켰다. 뜨거운 액체가 혀와 입천장을 훑고 내려갔다. 목 깊숙이 뜨거움이 스며들었다. 가슴, 위, 배쪽 장기들이 안에서부터 풀렸다. 온기가 손끝까지 번져 갔다. 집게를 잡았던 손의 떨림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 덕분에 기록이 덜 어긋나겠군요." 연서경이 낮게 말했다. 거의 자신에게 들려주는 속삭임에 가까운 톤. "빚은 기억해 두겠습니다." 강진혁의 입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인지, 다른 감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흔들림. "빚이라면," 그가 보온병 뚜껑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나중에 목숨으로 받지." 형조 조사관이 헛기침을 했다. "두 분, 이젠 마력 등록부를—" "네." 연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한층 또렷해졌다. "등록부를 확인하죠." *** 황실 마력 등록부는 해부실 구석, 철제 자물쇠가 달린 서랍 속에 있었다. 두꺼운 양피지 책이 책상 위에 올라오자, 눅눅한 잉크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한꺼번에 퍼졌다. 먼지와 약간의 곰팡내가 섞인 공기였다. 연서경은 피해자의 이름을 찾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긁었다. 기록된 수치들—봄 계열 마력 속성, 폭주 이력 없음, 제어 팔찌 사용 기간, 최근 3년 검사 결과—이 줄마다 매달려 있었다. "폭주 이력, 없습니다." 그녀가 짧게 말했다. 형조 조사관을 향해 살짝 고개만 돌렸다. "제어 팔찌 기록도 깨끗하고요." "팔찌가 고장 났을 수도 있죠." 조사관이 급하게 덧붙였다. "기록이… 항상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검시를 하는 겁니다." 연서경이 등록부 여백에 아까 그린 마력 핵 패턴을 축소해서 옮겨 적었다. 점과 선, 층 구조를 간단히 요약한 그림. 옆 빈 공간에는 작은 메모지를 꺼내 붙였다. 메모지에는, 새벽에 강진혁 흉곽에서 나온 은빛 파편 문양이 따로 그려져 있었다.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선, 중간마다 끊기며 꺾이는 곡선, 마지막에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도형. 북부 대공가 인장의 변형이면서, 황실 금고 문양과도 닮은 곡선 구조였다. 연서경은 두 그림을 나란히 두었다. 마력 핵 패턴과 은빛 파편 문양. 선과 선이 겹치는 지점을 눈으로 쫓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곡선이 두 그림 사이에서 정확히 포개졌다. "… 잠깐만요." 형조 조사관이 눈을 비비며 등록부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숫자들이—" 등록부 한 줄에서 잉크가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물방울이 떨어진 듯 작은 얼룩이 생기더니, 곧 글자 전체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비에 젖은 벽처럼 서서히 농도가 퍼졌다. 종이가 손끝 아래에서 축축해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기존 수치들이 흐릿하게 지워졌다. 그 위로 새로운 값이 떠올랐다. '폭주 이력 없음'이 '1회 경미'로 바뀌었다. 계절 속성 수치도 미세하게 조정됐다. 마치 누군가 지금 이 순간, 다른 곳에서 펜을 들고 덮어쓰는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뭐죠?" 근위병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귀신 장난입니까?" 형조 조사관이 거의 책을 낚아채듯 덮었다. "착시입니다. 피 냄새에, 다들 지쳐 있고. 보고서에는 착시였다고—" "누가," 연서경이 책 위에 손을 올렸다. 덮힌 표지를 장갑으로 눌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사람 기록을 바꾸고 있는 겁니다." 형조 조사관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런 근거 없는—" "근거?" 연서경이 눈썹을 아주 조금 올렸다. "방금 바뀐 수치를 우리 넷이 동시에 봤습니다. 그걸 착시라고 쓰시면, 형조는 오늘 증거 인멸에 동참한 셈이 되겠죠." 근위병들이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도 봤습니다." 앞쪽 근위병이 더듬거렸다. "잉크가… 밑으로 한 번 더 흘러내렸습니다." "들으셨죠." 연서경이 형조 조사관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러니 형조는 이 변화를 있는 그대로 적으셔야 합니다." 형조 조사관의 입술이 마르게 붙었다. 혀끝이 빠르게 입술을 적시고 지나갔다. "… 기록에," 그가 마지못해 내뱉었다. "부기하겠습니다. 검시 중, 등록부 잉크 변화 목격. 원인 미상." "원인 미상은," 연서경이 덧붙였다. "좌의정 각하께서 직접 밝히시겠죠. 마력 관리 체계를 설계하신 분이니까." 최도윤. 좌의정. 이름이 공기 위로 올라오는 순간, 해부실 온도가 한 번 더 내려앉았다. 기록과 마력을 동시에 쥔 손. 강진혁의 코트 자락이 돌바닥을 스쳤다. 무거운 마찰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잉크 냄새와 섞여 공간을 눌렀다. 연서경은 메모지를 살짝 돌렸다. 마력 핵 패턴 위에 은빛 파편 문양이 겹쳐 보이도록 각도를 맞췄다. 이 방향은 강진혁만 볼 수 있었다. "이 곡선."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 형조와 근위병이 듣지 못할 만큼의 톤. "전하 가문 인장과 같은 모양이죠." 강진혁의 손등 근육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눈이 무의식적으로 두 번 빠르게 깜빡였다. "이 문양은," 그가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북부, 우리 집안 사람들만 압니다." 연서경은 노트 위 마력 핵 패턴으로 다시 시선을 내렸다. 북부 인장 문양이 핵 구조 중심부와 정확히 포개지는 지점. 점과 선, 곡선과 결절이 한 그림으로 잠깐 맞물렸다. 도화선이 짧아지고 있었다. 이 살인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계절 실험의 일부였다. 그 사실이, 박제된 봄 냄새 속 해부실 한가운데 조용히 틀을 잡았다. 위층. 황궁의 다른 계절들이 언제, 어디서 터져 나올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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