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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깨진 유리 조각의 틈새

을지로의 휘어진 뒷골목은 거대한 기계가 뱉어낸 폐유와 오물이 뒤섞인 하수구 같았다. 낡은 벽돌 틈새마다 스며든 겨울의 칼바람은 도시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름때와 섞여 눅눅하고도 비릿한 악취를 풍겼다. 김도윤은 손때 묻은 단말기를 쥔 채, 허공에 부유하는 보이지 않는 균열을 응시했다. 대기는 날카롭게 갈린 유리 파편처럼 미세하게 진동하며 그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곳의 마력 밀도는 이미 통상적인 관리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과부하가 걸린 변압기처럼 위태로운 소음이 고막을 찔렀다. 단말기 화면 위로 붉은 점멸 신호가 요란하게 명멸하며 비명 같은 경고음을 뱉어냈다. 도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차가운 금속체의 감촉에 집중하려 애썼다. 손가락 끝은 이미 동상에 걸린 듯 감각이 무뎌져 있었으나,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박동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단순한 누출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태동에 가까웠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의 전원을 올렸다. "본부, 여기는 중재 단위-7. 을지로 4가 12번지 일대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누출을 감지했습니다. 수치가 임계점의 85%를 상회합니다." 무전기 너머에서는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건조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현장의 긴박함과는 동떨어진, 서류 뭉치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관료주의적인 음성이었다. "중재 단위-7, 보고 확인했다. 현 위치를 고수하며 백업 요원이 도착할 때까지 관찰만 수행하라. 임의적인 진입이나 간섭은 엄격히 금지한다." 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두컴컴한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네온사인이 얼어붙은 웅덩이에 반사되어 핏빛 잔상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그 너머에서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신음이 들려왔다. 덫에 걸린 짐승이 내뱉는 것처럼 억눌리고 절박한 소리였다. 그는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가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안쪽에 민간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찰만 하다가 시체 치우는 것도 제 업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중재 단위-7, 규정을 상기하라. 당신의 역할은 데이터 수집과 현장 유지다. 불필요한 영웅 심리는 조직의 자원 낭비일 뿐이다. 백업 도착 예정 시간은 15분 후다. 대기하라." 무전은 일방적으로 끊겼고, 차가운 정적만이 골목을 채웠다. 도윤은 자신의 구두 끝이 닿은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맷돌 아래 깔린 작은 돌멩이처럼, 자신은 언제든 가루가 되어 사라질 수 있는 존재였다. 규정을 따르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었고, 그가 그토록 바라는 '조용한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골목 안쪽에서 다시 한번 들려온, 숨이 넘어가는 듯한 꺽꺽거리는 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파도가 부서지기 전의 잔잔함처럼 고요했던 공기가 일순간 팽창하며 그의 고막을 압박했다. 그는 단말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거칠게 발을 내디뎠다. 보폭이 넓어질수록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골목 깊은 곳, 쓰레기 더미 옆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남자의 몸 주위로는 푸른빛의 정전기가 마치 굶주린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고, 그 중심부의 공간은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뒤틀려 있었다. 도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남자의 공포에 질린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몸이 먼저 튀어 나갔다. "살려... 제발, 뜨거워요...!" 남자의 비명은 이미 인간의 것이라기보다 찢어지는 금속음에 가까웠다. 폭주하는 마력의 소용돌이는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며 진공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도윤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제어 장치를 해제했다. 규정된 방어막 생성으로는 저 폭주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금기시된 과부하 출력을 선택하며, 자신의 혈관 속으로 마력을 강제로 끌어올렸다. 마력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순간, 그것은 액체 상태의 불꽃이 되어 그의 온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작열통이 밀려왔고, 시야는 붉은색 왜곡으로 물들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폭주의 중심부로 몸을 던졌다. 공간이 뒤틀리며 그를 밀어내려 했으나,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연료로 태우듯 손바닥에서 빛을 뿜어냈다. 고막을 긁는 고주파 이명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고, 피부 위로 튀어 오르는 파란 정전기가 살갗을 따끔거리게 찔러댔다. "제발... 멈춰...!" 도윤은 이를 악물며 주문을 뱉어냈다. 그것은 현대의 정형화된 마법 공식과는 거리가 먼, 본능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그의 손끝이 마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까맣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손가락 관절 하나하나에 납을 들이부은 듯한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폭주하는 마력의 장막 너머로 기이한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현대의 마법 체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마치 살아있는 맥박처럼 요동치는 황금빛 기하학 문양이었다. 그 문양은 마치 오래된 무덤에서 날 법한 서늘한 돌 냄새를 풍기며, 도윤의 의식을 잠식하려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의 흐름이 아니라, 무언가 고대의 의지가 담긴 설계도처럼 보였다. 이건 우리가 배운 공식이 아니야. 공포가 빙하처럼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으나,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남은 마력을 쥐어짜 문양 위로 쏟아부었다. 타버린 종이 냄새가 진동하며, 황금빛 문양은 도윤의 빛에 덮여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폭주가 강제로 잠재워지자, 뒤틀렸던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도윤은 모든 힘이 빠져나간 자리에 밀려오는 극심한 탈진감에 무릎을 꺾었다. 아스팔트의 차가운 감촉이 뺨에 닿으려던 찰나, 누군가의 두 팔이 그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아까의 그 남자였다. 남자는 덜덜 떠는 손으로 도윤을 와락 끌어안으며 무너지려는 그를 지탱했다. 영하의 서울 바람이 골목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폭주의 잔열과 서로의 체온이 뒤섞여 기묘한 안식처를 만들었다. 도윤은 처음엔 타인의 갑작스러운 접촉에 당황해 몸을 굳혔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가까이 몸을 맡겨본 것이 언제였던가. 그러나 남자의 두꺼운 패딩 너머로 전해지는 격렬한 심장 박동과, 그의 뺨에 닿는 상대의 따뜻하고 눅눅한 숨결이 그를 안심시켰다. 도윤은 밀어내려던 손에서 힘을 빼고, 상대의 어깨에 고개를 깊숙이 묻었다. "고마워요... 정말로... 당신 손이 너무 떨려요." 남자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도윤은 자신의 손가락 끝을 내려다보았다. 감각을 잃어 까맣게 죽어버린 손끝이 추위에 노출되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래 겨울엔 좀 떨어. 별거 아니니까 꽉 잡기나 해." 두 사람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서로의 입김이 엉켜 하얀 안개를 만들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도윤은 이 짧은 유대감이 주는 안도감에 취해 당장이라도 잠들고 싶었으나, 곧 들이닥칠 수사관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는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가보세요. 곧 사람들이 올 겁니다. 당신이 여기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복잡해져요." 남자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윤은 남자가 떠난 자리에 남은 푸른 빛 가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은 고대의 힘이 남긴 흔적이었고, 동시에 파멸의 씨앗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낡은 개인용 수첩을 꺼냈다. 공식 보고서에는 결코 담을 수 없는, 방금 본 그 기괴한 황금빛 문양을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비뚤비뚤하게 그려 넣었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시수호파의 차량들이 골목 입구를 가로막았다. 눈부신 서치라이트가 골목 안을 샅샅이 훑었고, 무장한 요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 나왔다. 최가을이었다. 그녀는 단정한 코트 차림으로 도윤 앞에 서서, 그의 처참한 몰골을 차가운 시선으로 훑어내렸다. "중재 단위-7, 상황 보고하십시오. 명령 불복종에 대한 사유도 포함해서." 최가을의 목소리는 얼음송곳처럼 날카로웠다. 도윤은 까맣게 변색된 자신의 손을 등 뒤로 숨기며, 최대한 건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백업을 기다리기엔 누출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현장에 진입했을 땐 이미 폭주가 임계점에 달해 강제 진압을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민간인 피해는 없었고, 단순한 마력 과부하 사고로 종결되었습니다." 최가을은 도윤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의심과 경계가 뒤섞여 있었고, 도윤은 숨 쉴 때마다 방이 줄어드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는 도윤의 뒤편, 뒤틀렸던 공간의 흔적을 유심히 살피더니 짧게 혀를 찼다. "단순 사고라기엔 잔류 마력의 파장이 너무 이질적이군요. 김도윤 씨, 당신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 정규직 전환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협하게 될 겁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제 업무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보고서는 내일 아침까지 제출하죠." 도윤은 최가을의 시선을 피하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상급 요원들의 수군거림과 장비가 부딪히는 금속음이 들려왔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밤하늘에 뜬 창백한 달빛이 그의 수첩 위로 떨어졌다. 수첩에 그려진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 속에서 명멸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 문양은 자신이 기억 속 아주 깊은 곳,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첫 수호자들'의 전설에서 보았던 것과 일치했다.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보낸 초대장이었다. 도윤은 방금 구한 민간인의 옷깃에 묻어 있던 푸른 빛 가루가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보며, 서울의 심장부에서 무언가 거대한 재앙이 태동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의 손가락 관절에서는 여전히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고, 가슴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불안이 똬리를 틀었다. 서울의 마지막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는 수첩을 품에 깊숙이 갈무리하며,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심의 한복판으로 발을 내디뎠다. 자신이 방금 잠재운 것이 폭주하는 마력인지, 아니면 잠자던 괴물의 꼬리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선택한 이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밤공기는 더욱 차갑게 식어갔고,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은 거대한 맷돌이 삐걱거리는 비명처럼 들려왔다. 도윤은 자신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것을 보며, 보이지 않는 적이 이미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기괴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남겨진 골목에는 희미한 탄내와 함께, 누구도 읽지 못한 고대의 경고만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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