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실의 공기는 무겁다. 시큼한 포르말린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폐부 깊숙이 박히는 악취다. 낡은 가스등이 명멸하며 벽면에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연서경은 메스를 고쳐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진다. 눈앞의 시신은 말이 없다. 한때는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육체다. 이제는 그저 풀어야 할 복잡한 기계 장치일 뿐이다.
그녀의 시선이 시신의 흉부에 머물렀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 일반적인 사후 강직과는 다르다. 마력이 혈관을 타고 흐르다 멈춘 흔적이다. 연서경은 숨을 멈추고 첫 번째 절개를 시작했다. 메스가 피부를 가르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울린다. 둔탁하고 눅눅한 마찰음이다. 붉은 피는 나오지 않았다. 상처 틈새로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올 뿐이다.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연서경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가 빈 공간을 공허하게 맴돈다. 그녀의 손길은 정교했다. 늑골을 하나씩 들어내자 심장이 드러났다. 그것은 더 이상 뛰지 않는다. 하지만 심장 중앙에 박힌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푸른 인광을 내뿜는 작은 파편이다. 얼어붙은 마력의 결정체다. 연서경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결정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미세하게 진동했다.
시간이 촉박하온. 마력 결정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증발한다.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추출해야 한다. 그녀는 핀셋을 들어 조심스럽게 결정을 집어 올렸다. 손끝에 얼음 같은 냉기가 닿았다. 감각이 마비될 정도의 추위다. 결정은 불규칙한 다면체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표면에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연서경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문양이다.
어둠 속에서 가죽 장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묵직한 발소리다. 연서경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발소리의 주인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해부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차가운 밤바람이 실내로 들이친다. 가스등의 불꽃이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해부대를 덮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강진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쉰 듯하면서도 위압적인 톤이다. 연서경은 대답 대신 결정을 시험관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강진혁은 문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검은 코트 차림에 가죽 장갑을 낀 손이 칼자루에 머물러 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맹수처럼 번뜩였다. 연서경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검시관이 시체를 보는 게 이상하오?"
연서경의 말투는 단정하고 차가웠다. 그녀는 피 묻은 장갑을 벗어 던졌다. 강진혁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진한 가죽 향과 매캐한 담배 냄새가 났다. 그는 해부대 위에 놓인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위악적인 태도 뒤에 숨겨진 불쾌감이 읽혔다.
"이건 황제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다."
강진혁이 연서경의 손목을 낚아채며 말했다. 그의 손아귀 힘은 압도적이었다.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연서경은 신음 소리를 삼켰다. 대신 다른 손으로 품 안에서 작은 인장 반지를 꺼냈다. 북부 대공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반지다. 그녀는 그것을 강진혁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 문양, 당신 가문의 비밀 창고에서 본 것과 정확히 일치하오. 설명해 보시오, 강진혁."
강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연서경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손목을 쥐고 있던 힘을 풀었다. 하지만 거리는 좁히지 않았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연서경의 뺨에 닿았다. 해부실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출구가 멀어지는 기분이다. 연서경은 침을 삼키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진실은 때로 해부도보다 잔인하지."
강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연서경의 손에서 반지를 뺏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반지의 표면을 훑었다. 마치 오래된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동작이다. 그는 연서경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경고와 슬픔이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감당할 준비가 안 됐다면 여기서 멈춰. 더 면 돌아올 수 없다."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거짓을 말하는 건 언제나 산 사람이오."
연서경이 쏘아붙였다. 그녀는 시험관에 든 마력 결정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반지에 가까이 가져갔다.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결정과 반지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고막을 울리는 낮은 진동음이 해부실을 가득 채웠다. 푸른 광채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허공에 거대한 형상이 떠올랐다. 검은 눈꽃이다. 강진혁 가문의 상징이자, 북부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눈꽃은 기괴하게 뒤틀리며 해부실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마치 피로 쓴 일기처럼 보였다. 연서경은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것이 증거다. 부정할 수 없는 마력의 낙인이다.
"이것이 당신 가문의 마력이 아니라고 부정해 보시오."
연서경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발적인 질문이었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그녀는 그가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진혁은 침묵했다. 그는 그저 떠오른 눈꽃 형상을 무표정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근육이 행동을 위해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사냥을 앞둔 포식자의 긴장감이다.
챙그랑!
날카로운 파편 소리가 정적을 깼다. 창문 유리가 박살 나며 검은 그림자들이 난입했다. 자객들이다. 그들은 소리 없이 착지하며 연서경을 향해 투척 무기를 날렸다. 은색 침들이 공기를 가르며 쇄도했다. 연서경의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결정을 품에 안고 해부대 아래로 몸을 날렸다.
연서경!"
강진혁의 외침과 함께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불꽃이 어둠을 밝혔다. 연서경은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깨진 유리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서늘한 통증이 정신을 깨웠다. 머리 위로 검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해부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강진혁은 폭풍처럼 움직였다. 그의 검은 자객들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냈다. 그는 연서경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방패가 되었다. 검이 살을 가르는 둔탁한 마찰음이 들렸다. 비릿한 피 냄새가 포르말린 냄새와 섞여 진동했다. 자객들은 조직적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연서경이 든 마력 결정을 파괴하는 것이다.
"죽이지 마시오! 배후를 캐야 하오!"
연서경이 해부대 밑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강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치명적이었다. 자객 한 명의 목이 꺾이고, 다른 한 명의 가슴에 검이 박혔다. 그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마치 증거를 인멸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연서경의 눈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그는 나를 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입을 막는 것인가.
마지막 자객이 강진혁의 발치에 쓰러졌다. 해부실 바닥에는 검은 피가 고여 있었다. 강진혁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숨을 골랐다. 그의 등은 넓고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 너머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연서경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연서경을 내려다보았다.
"살아 있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았다. 연서경은 해부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옷은 먼지와 피로 더러워졌고,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마력 결정을 확인했다.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연서경은 강진혁의 눈을 쏘아보았다.
"왜 다 죽였소? 살려둘 수도 있었을 것이오."
"내 등 뒤에 있는 게 누군지 잊었나? 내 검이 아니었으면 그대는 이미 시체가 됐어."
강진혁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는 연서경에게 다가와 자신의 두꺼운 모피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는 주저앉아 있는 연서경의 어깨 위로 그것을 덮어주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그의 체온이 전해졌다. 은은한 침향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연서경은 그의 온기를 거부하려 했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추위로 떨던 근육이 서서히 풀렸다.
강진혁은 연서경의 차가운 손을 잠시 감싸 쥐었다. 그의 가죽 장갑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찰나의 온기였다. 그는 곧 손을 떼고 일어섰다. 그의 눈빛은 다시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당신이 보낸 자객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겠소. 그 질문, 아직 유효하오."
연서경이 외투 깃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강진혁은 대답 대신 깨진 창문 너머 어둠을 응시했다. 밤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믿지 마라. 이 황궁에서 믿을 수 있는 건 그대의 메스뿐이다."
그는 경고 같은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연서경은 홀로 남겨진 해부실에서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강진혁의 체온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더 큰 의문이 자리 잡았다. 자객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의 문양과 섞여 기묘한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단서의 시작이었다.
연서경은 바닥에 떨어진 자객의 소지품 중 하나를 발견했다. 작은 금속 패였다. 그곳에는 황실 서고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건의 실타래는 대공 가문을 넘어 황궁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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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어갔지만 연서경은 잠들 수 없었다. 해부실의 잔상은 망막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서고지기 정의찬을 떠올렸다. 그라면 이 금속 패의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강진혁의 경고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진실은 때로 해부도보다 잔인하지.'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마력 결정을 응시했다. 푸른 빛은 이제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연서경은 펜을 들어 기록을 시작했다. 죽은 자들이 남긴 마지막 목소리를 종이 위에 옮기는 작업이다.
"제11차 검시 기록. 피해자의 심장에서 추출된 마력 결정은 북부 대공 가문의 인장과 공명함. 그러나 현장에 난입한 자객들의 소지품에서 황실 서고의 표식이 발견됨. 두 세력 간의 유착 혹은 함정의 가능성 농후함."
연서경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기록을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멀리 황궁의 탑들이 검은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해부되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음을 직감했다.
다음 날 아침, 박하온이 해부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어젯밤 해부실에 침입자가 있었다면서요?"
박하온의 목소리가 해부실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연서경은 묵묵히 기구들을 정리했다. 그녀의 동작은 평소보다 더 정교하고 느렸다. 결벽증적인 정리벽이 도진 것처럼 보였다.
"별일 아니었다. 자라."
"별일 아니라니요! 시체들이 다 난도질당해 있고, 바닥엔 피가 흥건한데!"
박하온은 바닥의 핏자국을 보며 구역질을 참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연서경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시... 대공 전하께서 오셨었나요? 밖에서 전하의 호위병들을 봤거든요."
연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박하온에게 어젯밤 발견한 금속 패를 건넸다. 박하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패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서고지기 어르신이 관리하시는 물건 같은데요? 왜 이게 여기..."
"정의찬 어르신을 찾아가야겠다."
연서경이 겉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서늘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진실의 해부학적 가치는 그것이 아무리 추악하더라도 밝혀지는 데 있다. 그녀는 해부실 문을 잠갔다. 차가운 금속 열쇠의 감촉이 손바닥에 남았다.
황궁 서고로 향하는 길은 멀고 험난해 보였다. 복도마다 배치된 근위병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연서경은 강진혁의 외투를 다시 한번 여몄다. 그가 남긴 경고와 온기가 교차하며 그녀를 자극했다. 그는 적일까, 동지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는 또 다른 희생자일까.
서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설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의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우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서신이 들려 있었다.
"연 검시관님, 조심하세요. 좌의정 최도윤 대감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설화의 속삭임이 바람에 실려 왔다. 연서경은 걸음을 멈췄다. 최도윤. 제국의 모든 기록을 재편하려는 남자. 그의 이름이 나오자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멈춘 것 같았다. 모서리가 좁혀 오는 압박감이 전신을 감쌌다.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습니까?"
"당신이 어젯밤 찾은 그 결정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마력 덩어리가 아니에요. 제국의 역사를 뒤바꿀 열쇠죠."
이설화는 서신을 연서경의 손에 쥐여주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연서경은 서신을 펼쳤다. 그곳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자, 산 자의 침묵에 주의하라.]
연서경은 서신을 구겨 쥐었다. 주먹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힘을 주었다. 그녀의 관찰력은 이제 황궁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력보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믿기로 했다. 그것이 설령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해도.
그녀는 서고의 육중한 문을 밀었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너머로 어둠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정의찬의 갈라진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결국 왔구먼. 지워진 역사의 파편을 들고."
연서경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뒤로 문이 닫혔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진실의 해부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해부실 바닥에 남겨진 검은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서서히 번져나가며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지도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연서경은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 밤, 누군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연서경의 손등에 새겨진 검은 반점이 미세하게 가렵기 시작했다. 저주의 진행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메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계가 살아 움직이듯, 그녀의 이성이 다시금 날카롭게 벼려졌다.
"시작하겠소, 어르신. 이 제국이 숨기고 있는 진짜 사인을."
연서경의 목소리가 서고의 높은 천장에 닿아 흩어졌다. 어둠 속에서 정의찬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오래된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곳에는 강진혁 가문의 이름이 붉은 먹으로 지워져 있었다.
비극의 연결고리는 예상보다 훨씬 깊고 오래된 것이었다. 연서경은 숨을 몰아쉬며 첫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는 '계절 살인'의 시초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의 끝에는, 강진혁의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 적혀 있었다.
연서경의 눈이 커졌다. 유언의 내용은 그녀가 알고 있던 역사와 전혀 달랐다. 진실은 해부도보다 잔인하다는 강진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음 장을 넘기려 했다.
그때, 서고의 창문이 흔들렸다. 바람이 멈추고 기이한 정적이 찾아왔다. 누군가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이 뒷덜미를 스쳤다. 연서경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단검에 손을 올렸다.
"누구냐!"
정의찬이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서고의 등불이 일제히 꺼졌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진혁의 것과는 다른, 살의가 가득 담긴 숨소리였다.
연서경은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결정을 품에 꼭 쥐었다. 이것만은 절대 뺏길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