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16
Okunuyor
연회장의 소음이 문 하나 사이에서 잘려 나갔다.
안쪽 복도는 빈 집처럼 조용했다. 숨도, 기침도, 접시 부딪는 소리도 없었다.
벽마다 걸린 등롱 불빛이 낮게 춤췄다. 노란 불꽃이 길게 늘어났다 끊어졌다. 멀리서 음악과 웃음이 늦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두꺼운 벽에 부딪혀 찢겼다. 잔향만 복도 끝에 눌어붙었다.
연서경은 손가락을 한 번 폈다 쥐었다.
장갑 속 마디가 마른 가지처럼 움직였다. 방금 전까지 시체의 장기를 뒤집던 손이었다. 아직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연회는 이미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일정한 속도로 따라왔다.
철과 가죽이 부딪히는 소리. 군화가 돌바닥에 박히는 둔탁한 리듬. 호위가 아니라, 경계하는 자의 걸음이었다.
"속도 좀 늦춰."
거칠고 쉰 목소리였다.
서경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숨을 조금 낮추고 입을 열었다.
"대공마마께선 연회장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진혁이 한 발 더 다가왔다. 허벅지에 매단 장검의 칼집이 가볍게 스쳤다. 딱딱한 군화 밑창이 돌 사이 틈을 무시하고 그대로 밟아 뭉갰다.
"연회는 지루해."
그가 어깨를 한번 굴렸다.
"지금 재밌는 건, 자네가 하고 있잖아."
연회장의 음악이 잠깐 끊겼다.
누군가의 웃음이 한 번 튀어나오다가, 문턱에서 잘려 나갔다.
서경은 정면을 본 채로 말했다.
"죽은 자는 웃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솔직하지."
그의 숨이 옆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썩은 피 대신, 차가운 풀 냄새가 스쳤다. 바깥 찬 공기가 북풍처럼 복도 안으로 억지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둘은 연회장 뒤편, 좁은 비밀 출입문 앞에서 멈췄다.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 밤 공기가 두 사람의 목덜미를 쓸었다. 서경의 등골이 곧게 굳었다.
"저 안에 있지?"
강진혁이 문을 손등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속이 빈 나무 울림이 짧게 퍼졌다.
"예. 시신과… 증거가."
서경은 문고리에 장갑 낀 손을 올렸다. 손끝 감각이 아주 미세하게 떠는 걸, 스스로도 무시하지 못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얇게 길게 이어졌다. 마치 얇은 껍질을 벗기는 칼날 같았다. 안에서 얼음장 같은 공기가 쏟아졌다. 한숨만 내쉬어도 입김이 보일 것 같았다.
"피 냄새는…"
그가 코를 찡그렸다.
"물로 닦았습니다."
말은 짧았지만, 코끝에는 여전히 젖은 돌과 쇠의 냄새가 맴돌았다. 바닥 틈새에 스며든 철 냄새는, 쉽게 설득당하지 않았다.
방 안은 좁았다.
한가운데 검시대가 있었다.
하급 관리의 시신이 천에 덮인 채 누워 있었다. 천 아래로 마른 팔 하나가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손톱 밑에 남은 먼지가 연회장의 색을 잊지 못한 듯 얼룩져 있었다.
방 한켠, 작은 탁자 위 금속 쟁반.
그 위에 올려진 것들.
에메랄드빛으로 굳어 버린 폐 조직 조각, 그리고 가느다란 은색 파편들.
서경의 시선이 그 파편으로 내려갔다. 찬 금속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눈 안에서 또렷하게 솟구쳤다.
북부 대공가의 문장이었다.
"다시 보여 줘."
강진혁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장검이 허리에서 약간 기울었다. 갑옷의 비늘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대공마마께서 보시기에는… 아래에서 그리고 연회장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건—"
"내 흉곽 설계도는 질리도록 봤어."
그가 낮게 웃었다.
"저 조각이랑 비교하려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지."
천장 위 어딘가에서 북소리가 둔탁하게 내려왔다.
연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문을 사이에 둔 다른 시간의 물결처럼 발밑을 스쳤다.
서경은 문을 닫았다.
철제 빗장이 내려가며 짧게, 무겁게 울렸다. 밖과의 연결이 거칠게 잘려 나간 기분이었다.
"천을 걷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천이 벗겨지면서 거친 마찰음이 귀살을 긁었다. 얼굴부터 가슴까지 드러난 시신의 피부는 이미 누렇게 말라 있었다. 눈꺼풀 위에, 연회장에서 흩날리던 분홍 꽃가루가 몇 알 남아 붙어 있었다. 축제와 죽음이 같은 얼굴에 남은 흔적이었다.
"목."
강진혁이 턱으로 시신의 목선을 가리켰다.
"여길 찔린 거지?"
"기도 안쪽에 암기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서경은 옆에 둔 작은 상자를 열었다. 안쪽에 감춰둔 첫 번째 쇳조각이 차가운 빛을 다시 드러냈다.
조각이 쟁반 위로 떨어지며 얇은 얼음 긁는 소리를 냈다.
방 안 공기가 그 소리에 맞춰 미묘하게 조였다 풀렸다.
"이게 기도 안에서 나온 것."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폐에서는…"
새로운 쟁반을 끌어당겼다.
에메랄드빛 응고 조직과 은색 파편이 나란히 놓였다. 등불 불빛이 파편 가장자리를 핥듯이 흘렀다.
강진혁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검시대 곁으로 와서, 그는 쟁반을 내려다봤다. 손등의 힘줄이 조금 도드라졌다. 잠깐, 숨소리도 멎었다.
"이 무늬."
쉰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왼쪽 가슴께를 손등으로 가볍게 눌렀다. 옷감 아래, 흉곽 깊숙이 박힌 자신의 상처 자리를 더듬는 듯한 동작이었다.
"내 것도, 이랬지."
"예."
서경은 허리를 곧게 세웠다.
"대공마마께서 북부 전장에서 돌아오셨을 때, 폐 주변에 박혀 있던 은 조각의 문양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방 안 체온이 한순간 떨어진 듯했다. 등불이 크게 한번 흔들렸다. 심지가 기침이라도 하는 것처럼 치직거렸다.
"그래서."
강진혁의 시선이 시신에서 그녀로 옮겨왔다. 검은 눈동자가 등불 그림자 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았다.
"누가 날 실험했고, 누가 이놈을 죽였는지… 같은 손이라는 말이지?"
"현재까지의 증거로는 그렇습니다."
서경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게 가라앉았다.
"계절 마력 응고 패턴, 금속 파편 합금 비율, 문양. 세 요소가 모두 같습니다."
"연회장에선 어디까지 말했나."
"타살."
그녀는 숨을 한번 고르고 덧붙였다.
"그리고 대공마마의 흉곽과 유사한 실험 구조. 그 이상은, 연회장의 귀들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강진혁이 천천히 어깨를 돌렸다. 갑옷 연결부가 뻑뻑한 소리를 냈다.
"좌의정 귀엔, 벌써 들어갔겠지."
"형조 조사관이 이미 상주에 보고 올렸을 것입니다."
서경은 다시 시신의 목을 살폈다.
"좌의정 최도윤께서 마력 등록부를 설계하셨다지요."
"그래."
짧은 대답. 턱 근육이 안쪽에서 살짝 움직였다. 이 안에서 뭔가를 씹고 삼키는 표정이었다.
"그 등록부가 방금, 눈앞에서 고쳐졌습니다."
서경은 쟁반 옆에 놓인 두루마리를 펼쳤다. 검푸른 잉크가 말라붙은 종이. 그 위에 겹쳐진 듯한 다른 글자들. 흐릿하지만 분명한, 뒤늦게 덧칠된 수정.
"형조 조사관과 근위병 둘이 증인입니다.
사망 시각과 마력 농도가, 제가 기록한 직후에 바뀌었습니다."
"기록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혼자 움직였다는 건가?"
"누군가, 황궁 어딘가에서 직접 조작한 것입니다."
서경이 숫자를 짚는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건 마력 변화가 아니라, 기록 변조입니다."
잠시, 위층에서 나무 대들보가 삐걱거렸다. 연회장 어딘가에서 누가 춤을 추다 바닥을 강하게 밟아 내린 모양이었다. 위층의 환성이, 아래층의 방을 억지로 흔들어 깨우는 기분이었다.
"좌의정."
강진혁이 그 이름을 씹듯이 발음했다.
"잉크랑 숫자로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양반이지."
서경의 눈앞에 십 년 전 글씨가 포개졌다.
선대 황실 검시관이던 아버지가 남겨 둔 초고.
‘사계절 마력 실험. 봄 제물. 북부 출신 실험 대상. 崔道潤. 尹成浩.’
펜촉이 종이를 찢다가 멈춘 듯한 서체가, 가장자리에서 일그러져 있었다. 그 글씨를 떠올리는 순간, 그녀의 귓속이 다시 웅웅 울렸다.
— 목이… 빠르게… 꺼내 줘…
죽은 하급 관리의 목소리가, 피가 아닌 공기처럼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서경은 손등에 돋은 소름을 장갑 너머로도 느꼈다.
"연서경."
강진혁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얼굴이 안 좋다."
"검시 중에 뵀을 때, 조금 무리했습니다."
그녀는 짧게 잘라 말했다. 시선을 시신 쪽에 박아 올려다보지 않았다.
"대공마마."
숨을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목숨이 걸린 거면, 일단 듣고 보지."
건조한 농담이었다. 눈만큼은 장난이 아니었다.
"폐를 다시… 벌려야 합니다."
서경의 시선이 시신의 가슴께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마력 흔적이 아니라, 파편의 각도와 흔적을 봐야 합니다."
"벌써 한 번 열었잖아."
"예. 그때는 살아 있는 증인들 앞이었습니다."
그녀는 장갑 끝을 더 깊게 밀어 넣었다. 손목까지 흰 가죽이 살을 물어 잠갔다.
"이제는, 사적인 검시입니다."
"사적인?"
그가 낮게 웃었다.
"황제의 대공비랑 북부 대공이, 같은 방에서 시체를 다시 연다…"
서경이 그의 눈을 짧게 올려다봤다.
"누가 무엇을 보았는지, 증언할 사람은 줄어들겠지요. 그래서, 위험합니다."
강진혁의 어깨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왔다. 숨이 조금 길어졌다.
"위험하면."
그가 저쪽 벽을 한번 쳐다봤다가, 다시 그녀를 봤다.
"대신 내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면 되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연회장에선 자네가 내 편을 들어 줬지."
그의 시선이 쟁반 속 문양을 스쳤다.
"이젠 내가 갚을 차례야."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문 쪽으로 걸어갔다. 빗장을 풀어 문을 조금 열었다. 바깥 복도의 공기와 소리가 틈 사이로 밀고 들어왔다.
"근위병."
거친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렀다.
"예, 대공마마!"
긴장한 응답. 갑옷이 서로 치며 나는 소리가 따라왔다.
"지금부터 이 문 안에 드나드는 사람, 내 허락 없이는 없다."
그가 덧붙였다.
"황제 부름이 와도, 연회장이 무너져도. 알겠나."
"허나… 형조에서…"
"형조판서 윤성호에게 전해라."
강진혁이 문을 조금 더 열며, 복도로 목소리를 박았다.
"북부 대공이 황제의 대공비와 독대 중이라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 다음 터져 나온 목소리는 당황과 두려움이 뒤섞인 음색이었다.
"명, 명 받들겠습니다!"
문이 다시 닫혔다. 빗장이 내려갈 때, 이번엔 더 깊숙이 가라앉는 소리가 났다.
"이제."
그가 돌아섰다.
"사적인 검시, 해도 되겠지?"
서경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옵니다, 대공마마."
"덕은 나중에 계산하자고."
그는 검시대 반대편으로 와 섰다.
"자, 시작하지."
가위를 든 서경의 손이 공중에서 잠깐 멈췄다. 요즘 들어, 때때로 손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죽은 자의 목소리가 손끝으로 흘러 들어와, 근육을 대신 움직이는 감각.
그래도 움직였다.
가위날이 천과 살을 가르며 건조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위층 음악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잘랐다.
흉곽이 다시 드러났다.
갈비뼈 사이로 응고된 피가 굳어 있었다. 에메랄드빛 결정이 갈비뼈에 달라붙은 이끼처럼 매달려 있었다.
"여기입니다."
서경이 한쪽 폐 옆을 집게 끝으로 가리켰다.
"파편이 통과한 흔적."
갈비뼈 안쪽에 긁힌 자국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었다. 어떤 힘이 한 방향으로, 같은 길을 반복해서 밀고 들어온 흔적이었다.
"이 각도."
그녀가 금속 집게로 파편을 들어 올렸다.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안쪽으로."
"아래에서 위, 안쪽…"
강진혁이 자기 가슴께를 두드렸다.
"내 것도 그랬다."
"누군가, 같은 도면을 쓰고 있습니다."
서경이 조용히 말했다.
"인체를 표적으로 삼는 마력 설계입니다."
"사냥꾼이 사슴을 쏠 때, 항상 같은 자리 노리니까."
그가 중얼거렸다.
"심장, 폐. 한 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데."
"사냥감이 달라지면, 화살을 바꿉니다."
서경이 집게를 내려두었다.
"그런데 이 설계자는, 같은 화살을 씁니다. 북부 전장의 병사든, 황궁의 하급 관리든."
강진혁이 웃지도 않은 얼굴로 그녀를 봤다.
"그러니까."
그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저 하급 관리와 같은 종류의 짐승이었다는 소리네."
서경은 입을 다물었다.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말도 이 상황을 덜 잔인하게 만들 수 없어서였다.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가장 정확한 말을 골랐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어디까지 버티는지 지켜보는."
강진혁의 어깨가 잠깐 굳었다. 어깨선이 귀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힘이 빠지며 내려왔다.
"십 년 전."
그가 낮게 말했다.
"북부 전장에서 처음 쓰러졌을 때, 황궁에서 온 마법사들이 내 몸을 둘러싸고 있었지."
말을 미뤘다. 눈꺼풀이 느리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뭐라 했습니까."
서경이 묻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볍게 깎았다.
"기억나는 대로 말하면…"
그가 몸을 약간 검시대 쪽으로 기울였다. 마치 전장을 내려다보는 장수처럼, 자신의 과거를 내려다보는 자세였다.
"'봄의 폐는 잘 붙어 있군.'"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마법사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어. '이번엔 겨울을 더 섞어 보세.'"
방 안 공기가 한층 내려앉았다. 에메랄드빛 결정이 등불을 받아, 서늘하게 반짝였다.
"계절."
서경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종이처럼 얇았다.
"봄과 겨울을, 폐에 섞었다는 말씀이옵니까."
"그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지."
그가 입 한쪽을 비틀었다.
"전장은 살아남으면 되는 데니까. 안 죽으면, 이기는 쪽."
"지금은 다르시옵니까."
"지금은."
그가 숨을 길게 뱉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호한 숨이었다.
"안 죽고 버틴 값이 뭔지, 조금은 알겠어서."
그때, 문 바깥 복도에서 낮게 다투는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들어가시면 안 된다니까요."
근위병의 목소리가 팽팽했다.
"나는 형조의—"
형조.
윤성호의 부하들이었다.
강진혁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시끄럽군."
"들여보내시겠습니까."
서경이 물었다.
"아니."
그가 단칼에 잘랐다.
"지금 문 열리면, 이걸 다 덮으려 들겠지."
"그렇다면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서경이 말했다.
"대공마마께서 그때 들으셨던 말을… 조금 더 듣고 싶사옵니다."
"자네가 내 과거를 캐는 게, 형조놈들보다 더 불편한데."
그가 허리를 펴며 웃었다. 웃음 끝에서 짧은 기침이 튀어나왔다.
숨이 삐걱거렸다.
젖은 나뭇가지가 안에서 부러지는 소리처럼, 폐 어딘가에서 물과 금속이 서로 긁히는 소리가 났다.
서경의 시선이 그의 가슴께로 떨어졌다. 옷 안쪽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눈에 보일 것처럼 짙었다. 얼음과 불이 한곳에서 맞붙어 으르렁대는 느낌이었다.
"통증이 심하십니까."
"늘 그래."
그가 아무렇지 않은 척 손등으로 입가를 훑었다. 손끝엔 피 대신, 거칠게 밀려 나온 숨만 남았다.
"마력을 진정시키는 약초를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연회 전에 먹었지."
그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자네가 내려 보낸, 역겹게 쓴 그 차."
"효과가 없었습니까."
"있더군."
그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대신, 밤마다 이 흉곽이 남의 것 같아져."
서경의 손가락이 아주 조금 떨렸다. 자신이 느끼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어떻게 남의 것 같습니까."
조심스럽지만, 깊이 찔렀다.
"안에서 누가."
그가 가슴께를 눌렀다.
"문 두드리는 기분."
공기가 뻣뻣해졌다. 흉곽. 문. 두드림.
서경의 귓속에서, 방금 전 죽은 하급 관리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 꺼내 줘…
"대공마마."
서경이 검시대 가장자리에 손을 올렸다. 나무의 거친 결이 장갑을 건너 손바닥을 찔렀다.
"사적인 부탁을 한 가지 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 이 와중에?"
그가 피식 웃었다.
"재밌는 부탁이면, 들어 보지."
"숨을."
그녀가 말했다.
"깊게 들이쉬셨다가, 천천히 내쉬어 주십시오."
"여기서?"
"예."
서경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대공마마 폐와 시신의 폐, 마력 흐름을 비교해야 합니다.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부분이라, 지금 확인해야 합니다."
강진혁이 그녀를 한동안 가만히 봤다.
눈 안쪽에서 뭔가 계산하는 기색이 번쩍였다.
"자네, 내 몸을 검시하겠다는 거네."
"이미 수십 차례 했습니다."
서경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는, 제 눈과 귀만 쓰는 것입니다."
"…좋아."
그가 허리에 찬 검을 옆으로 밀어냈다. 옷깃을 느슨하게 풀어 가슴께를 조금 드러냈다.
차가운 방 공기가 그의 살에 닿자, 얇게 소름이 돋았다. 서경은 그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녀가 한 발 다가섰다. 두 사람 사이 거리가 검 한 자락으로 줄었다. 서로의 숨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강진혁의 가슴이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가, 서경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젖은 금속이 안에서 움직이는 듯한 거친 울림.
서경은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귀를 그의 흉곽 가까이 가져갔다. 옷감과 살에서 올라오는 체온이 뺨 근처에서 멈췄다.
피 냄새 대신, 약초와 쇠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해부실에서만 맡을 것 같은 공기였다. 살아 있는 몸이, 죽음의 냄새를 흉내 내는 기묘한 향.
"숨을 내쉬십시오."
그가 길게 숨을 뱉었다. 숨결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사소한 접촉인데도, 열기가 두피를 찌르는 듯했다.
"폐 아래쪽에서."
서경이 낮게 말했다.
"마력이 뒤섞이는 소리가 납니다."
"뒤섞여?"
"봄과 겨울이 서로 밀어내다가 엉키는 느낌입니다."
그녀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찬 바람과 단단한 얼음 조각이 서걱거리며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하급 관리의 폐에서 들리던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한동안, 강진혁의 숨만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위층에서 들리던 음악은 더 멀어졌다. 방 안 소리는, 그의 폐 안에서 나는 마찰음뿐이었다.
"자네."
그가 낮게 말했다.
"지금, 얼굴 붉었어."
"검시 중입니다."
서경은 곧바로 한 발 물러섰다.
"검사일 뿐입니다."
"검사도, 얼굴은 붉어지지."
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얇게 깔린 안도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숨소리를 누군가 이토록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는 일. 그의 평생에 없던 경험처럼 보였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서경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대공마마의 폐도 같은 설계의 ‘실험’입니다. 다만, 아직은—"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살려 두려는 설계다?"
"계절 마력이 완전히 폭주하지 않도록 조절된 상태입니다."
서경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누군가, 대공마마를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숫자와 잉크, 마력으로."
"사냥꾼이, 아직 방아쇠를 끝까지 당기진 않았군."
그의 목소리가 더 깊이 가라앉았다.
"언제든 쏠 수 있게, 겨냥만 해 둔 상태."
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하급 관리의 죽음은, 경고이자… 실험의 다음 단계입니다."
"경고?"
"대공마마께서 연회장에 계셨습니다."
그녀는 차분히 이어갔다.
"대공마마의 폐와 같은 설계의 죽음을, 대공마마가 직접 보도록 만든 것. 그게, 메시지입니다."
"나한테 보낸 편지."
그가 뱉듯 말했다.
"너도 이렇게 죽일 수 있다, 그거지."
"예."
방 안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검시대 위 시신이 더 이상 그냥 하급 관리로만 보이지 않았다. 피와 금속과 계절 마력으로 적힌, 위협문 한 줄처럼 보였다.
문 밖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엔 더 조급한 목소리였다.
"대공마마! 형조판서 각하께서 직접—"
이름이 나오자, 강진혁의 표정이 살짝 갈라졌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눈가까지 닿기 전에 얼어붙었다.
"들어오라 해."
서경이 그를 올려다봤다.
"지금, 여기로 부르시겠습니까."
"그래야지."
그가 낮게 웃었다.
"사냥꾼이 던진 화살을, 누가 치우는지 직접 봐야지."
빗장이 올라갔다. 문이 열리며 복도의 찬 공기가 방 안으로 쏟아졌다. 등불이 크게 한번 흔들렸다.
윤성호가 문턱에 모습을 드러냈다. 번들거리는 비단 도포, 기름진 얼굴에 붙은 억지 웃음. 눈은 허리 굽히기 전에 이미 방 안을 훑고 있었다.
"아이고, 대공마마."
그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황제 폐하께서도 찾고 계신데…"
"황제는 형조판서부터 보냈군."
강진혁이 검시대 옆에서 말했다.
"체면값은 하게 해줘야지."
윤성호의 볼살이 순간적으로 떨렸다.
"소, 소인은… 좌의정 각하께서 여전히 연회 중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해, 속히 결론을 내려 달라 하셔서…"
"결론이라."
강진혁이 쟁반을 집어 들었다. 은색 파편과 에메랄드빛 조직이 그의 손 위에서 살짝 흔들렸다.
"이걸 보고도, '우발적 마력 폭주'라 적을 건가?"
윤성호의 시선이 파편에 빨려들었다. 얼굴이 눈에 띄게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건… 점차—"
"황실 인장 조각입니다."
서경이 한 발 나섰다.
"그리고 북부 대공가의 문양."
"검시관."
윤성호가 억지 웃음을 되살리려 했다.
"검시는 이미 끝난 것 아니오? 형조에서 결론을—"
"결론을 바꾸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서경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좌의정 최도윤께서 설계하신 마력 등록부가, 검시 중에 스스로 바뀌었습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형조 조사관과 근위병이 증인입니다."
서경이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여기, 형조의 손으로 '잉크 변화, 원인 미상'이라는 부기가 남아 있습니다."
윤성호의 입술이 덜덜 떨리다, 멈췄다.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위층 음악이 다시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기묘하게도 그 음악이 더 상황을 조여 왔다.
"그러니."
강진혁이 윤성호에게 한 발 다가섰다.
"형조판서."
존칭을 썼지만, 말끝이 살짝 비틀렸다.
"이 사건의 결론을, 좌의정한테 어떻게 보고할지… 오늘 여기서 같이 정하자고."
윤성호의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연회장 쪽, 검시대 위, 쟁반, 두루마리, 그리고 두 사람. 입안에서 침이 바싹 마르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대공마마."
그가 말을 골라 꺼냈다.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면, 모두 곤란해집니다. 하급 관리 하나의 죽음 때문에, 북부와 황궁의 관계까지—"
"'하급 관리 하나'."
강진혁이 그 말을 그대로 되짚었다.
"그 말, 기억하지."
서경의 손이 검시대 옆에서 힘을 줬다. 장갑 위로도 힘줄이 도드라졌다.
"이 죽음은 설계된 것입니다."
그녀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대공마마의 폐와 이어져 있습니다. 황궁 안에서 누군가, 계절 마력을 표적 살인에 쓰고 있습니다."
윤성호의 목젖이 크게 한번 움직였다. 침 삼키는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렸다.
"그, 그럼 어쩌란 말이오."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검시관, 대공마마. 자칫하면… 우리 모두가 사냥감이 되오."
"이미 그렇습니다."
서경이 잘라 말했다.
"다만, 누구의 표적이 될지, 언제가 될지 모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강진혁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선택해야겠지."
윤성호가 그를 올려다봤다. 계산과 두려움이 눈 안에서 교차했다.
"좌의정 쪽에 붙을지."
강진혁이 한 발 더 다가섰다.
"아니면…"
그가 잠깐 말을 끊고 서경을 힐끗 봤다.
"죽음의 기록을 남기는 쪽에 붙을지."
연회장의 북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 이번엔, 처형장을 알리는 북처럼 들렸다.
윤성호의 눈동자가 떨렸다. 손가락이 도포 자락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좌의정 각하는…"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록을 설계하신 분이오. 잉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런 분을 거스르는 건…"
"사냥꾼 등짝에 표적을 그리는 일."
강진혁이 그를 대신해 문장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서경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기록은, 시신 위에 먼저 새겨집니다. 종이보다 살과 뼈가 더 오래 갑니다."
그녀의 시선이 검시대 위 시신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윤성호에게로 돌아왔다.
"형조판서 대감께선, 어느 쪽 기록 위에 서고 싶으십니까."
그때 등불이 크게 흔들렸다. 심지가 늘어지며 검게 타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방 안이 어둠에 잠겼다가, 다시 희미한 빛이 돌아왔다.
그 찰나에 서경의 눈에 이상한 것이 스쳤다. 검시대 뒤쪽 벽. 희미한 그늘이, 사람 그림자처럼 미세하게 움직였다.
누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쪽엔 문도, 창도 없었다.
"보셨습니까."
서경이 무심한 척 물었다. 시선은 일부러 파편 쪽에 고정해 두고.
"무, 무엇을 말이오."
윤성호가 당황해 눈을 더 크게 떴다.
강진혁은 짧게 벽 쪽으로 눈길을 줬다. 미간이 순간적으로 좁혀졌다.
"방금."
서경이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등불이 꺼질 때, 벽에… 마력 흔적이 스쳤습니다."
그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도 발밑 땅이 아주 살짝 흔들린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시선을 통해 방 안을 눌러 보는 듯했다.
"좌의정 각하께서."
윤성호가 속삭였다.
"이 방까지, 눈을…"
"잉크와 숫자만이 아니라."
강진혁이 낮게 말했다.
"그림자까지 움직이는군."
서경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입 안이 모래처럼 바싹 말랐다.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회장 발코니에서 느꼈던 그 시선과 닮아 있었다.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대감."
서경이 다그쳤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윤성호의 시선이 두루마리와 쟁반, 시신, 두 사람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이마에 맺힌 땀이 등불에 반사돼 번들거렸다.
"… 좋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검시관의 기록을, 우선으로 삼겠소."
강진혁의 눈이 가늘어지며 웃음 비슷한 빛이 스쳤다.
"좌의정 귀엔, 뭐라고 변명할지 벌써 생각났나."
"그분께는…"
윤성호가 힘겹게 웃었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고… 말해야겠지요."
"변수라."
서경이 낮게 되뇌었다.
"그 변수 안에는, 대공마마와 소인도 포함되겠군요."
윤성호는 대답 대신 허리를 깊이 숙였다.
"검시관… 아니, 대공비마마."
호칭을 바꾸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 일, 너무 지 마시오."
"지금 그 말씀은, 협박이십니까, 충고이십니까."
서경이 물었다.
"… 위에선 둘 다요."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계절 바뀌기 전에, 누가 먼저 쓰러질지 모르는 세상이라서."
그 말만 남기고 그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빗장이 다시 내려갔다.
조용해졌다.
연회장의 소음은 다시 멀어졌다. 등불 불꽃이 잔잔하게 떨렸다.
"변수라네."
강진혁이 툭 던지듯 말했다.
"우린 이제, 그들의 계산에서 튀어나온 숫자."
"변수는, 때때로 계산을 무너뜨립니다."
서경이 쟁반 위 파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자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오늘, 위험한 말을 많이 했어."
"직업병입니다."
"죽은 자 편을 들어 주는 직업병?"
"죽은 자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서경이 조용히 말했다.
"살아 있는 자들은, 기록을 고치고요."
말이 방 안에 잠깐 떠 있었다.
"연서경."
강진혁이 다시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톤이었다.
"내가 만약, 저놈처럼…"
그가 턱으로 검시대 위 시신을 가리켰다.
"폐가 완전히 무너져서, 여기 누워 있다면."
서경의 손가락이 순간 굳었다.
"그때도, 이렇게 꼼꼼히 봐 줄 거지?"
농담처럼 들리는 말투. 그러나 눈빛은 농담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낙하를, 미리 계산해 본 사람의 눈이었다.
"대공마마께서 누우실 자리는 아닙니다."
서경이 말했다.
"적어도, 제 검시대 위는."
"그럼 어디 위지."
"… 살아 계실 때, 정하십시다."
겨우 그 말을 내뱉었다.
강진혁이 숨을 잠시 멈추더니, 느리게 웃었다.
"그 말, 약속처럼 들리네."
"약속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빚이겠지."
그가 말했다.
"자네가 내 목숨 하나쯤은 받아 줄 거란 빚."
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시대 위 시신을 향해 천을 다시 덮었다. 천이 살 위를 덮으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 죽은 자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살아 있는 자들의 차례였다.
밖에서 연회장의 북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엔 조금 느리게 들렸다. 누군가 일부러 박자를 붙잡고 늦추는 것처럼.
"가시지요."
서경이 말했다.
"연회장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강진혁이 문 쪽으로 걸었다.
"오늘 밤, 누가 다음 표적인지 보러 가야 하니까."
그 말에, 서경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다음 표적이라니요."
"계절 사냥꾼이, 한 번만 쏘고 끝낼까."
그가 문을 열며 말했다.
"오늘은 봄의 폐 하나. 다음 계절이 오기 전에, 또 누군가는 쓰러질 거다."
짧은 침묵이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등불 불꽃이 길게 그림자를 끌고 바닥을 스쳤다.
"그때…"
그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연서경."
"예."
"사냥꾼을 먼저 찾을지, 표적이 될 사람을 먼저 찾을지."
목소리가 낮았다.
"자네는 어느 쪽이겠나."
서경은 입술이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사냥꾼을 찾는 건, 검시관의 일.
표적이 될 사람을 지키는 건, 검시관의 임무가 아니었다.
그런데 방금, 그의 흉곽에서 들은 뒤엉킨 계절 소리가 귀에서 가시지 않았다.
"… 밖에서, 둘 다."
결국, 그 말을 꺼냈다.
"제 직무를 벗어나더라도."
강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 눈동자가 등불에 잠깐 빛났다.
"그 답이면."
그가 말했다.
"내가 자네 옆에 서 있을 이유로는, 충분하네."
문이 완전히 열렸다. 연회장의 음악이 다시 그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런데 그 음악 뒤편에서 다른 소리가 겹쳤다.
짧은 비명.
잔 깨지는 소리.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키는 소리.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봤다.
"또 하나."
강진혁이 이를 악물었다.
"넘어갔군."
서경의 심장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번엔 정말로 발밑 바닥이 흔들린 것 같았다.
연회장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또 쓰러졌다.
사냥꾼이, 두 번째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그 표적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오늘 이 방에서 쌓인 말들과 선택은 전부, 다시 검시대 위에 올라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