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금박 기둥 뒤로 눅눅한 이끼 냄새가 스몄다. 연회장 입구를 가득 채운 백합 향수는 그 악취를 가리기 위한 조잡한 덧칠에 불과했다. 연서경은 숨을 들이켰다. 인위적인 꽃향기 아래로 금속성 마력의 비릿한 잔향이 폐부를 찔렀다. 시신 안치소의 익숙한 냄새, 바로 범죄의 흔적이다.
드레스 자락 아래, 허벅지를 압박하는 가죽 칼집이 차갑게 닿았다. 서경은 손끝으로 메스의 매끄러운 감촉을 확인했다. 옆에 선 강진혁의 정복 너머로 맹수 같은 긴장감이 읽혔다. 그의 팔을 잡은 서경의 손바닥으로 단단한 근육의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대공비 전하."
강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쇠사슬이 바닥을 끄는 듯한 음색이다. 서경은 정면을 응시하며 입술을 뗐다.
"시신 안치소보다 공기가 탁하군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서서히 썩어가는 중입니다."
귀족들의 시선이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날아와 박혔다. 반역자로 몰린 대공 부부의 등장에 연회장의 소음이 일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뱀의 혀처럼 너풀거리는 속삭임이 공중을 유영했다. 최도윤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다. 그들의 눈빛에는 살의보다 비겁한 호기심이 더 짙게 깔려 있었다.
중앙 분수대에서 맑은 물줄기가 솟구쳤다. 조명을 받아 수정처럼 부서지는 물결을 보며 서경은 피해자의 목을 조르던 기계 바늘을 떠올렸다. 그녀는 품 안의 작은 유리병을 만지작거렸다. 다섯 번째 희생자의 폐에서 추출한 푸른 결정이 그 안에서 기괴하게 빛났다.
"저기 있군."
강진혁의 시선이 연단 위를 꿰뚫었다. 황금 잔을 든 황제 옆에서 최도윤이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소동을 관조하는 설계자처럼 평온해 보였다. 서경의 턱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노는 냉정함이라는 외피를 두른 채 심장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황제가 잔을 높이 쳐들었다. 제국의 번영과 '계절의 축복'을 찬양하는 연설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서경은 진혁의 팔을 놓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리석 바닥을 때리는 구두 굽 소리가 정적을 깼다.
"잠시 멈추시지요, 폐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연회장 구석구석까지 명확하게 파고들었다.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근위병들이 즉각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금속이 마찰하는 날카로운 소음이 긴장을 고조시켰다.
최도윤이 부드러운 미성으로 끼어들었다.
"대공비, 이곳은 죽은 자의 사정을 늘어놓는 검시소가 아닙니다. 예의를 갖추시지요."
"죽은 자는 거짓말을 못 하오. 거짓은 산 자들의 전유물이오, 좌의정."
서경은 최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차가운 질서가 담겨 있었다. 서경은 품에서 푸른 결정을 꺼내 보였다. 조명을 받은 결정이 독충의 날개처럼 번뜩였다.
"이것은 다섯 번째 희생자의 폐에서 꺼낸 것입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축복'이 남긴 찌꺼기지요."
망설임 없이 결정을 분수대를 향해 던졌다. 푸른 광석이 포물선을 그리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1초, 2초.
치익, 하는 파열음과 함께 분수의 물이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맑았던 물줄기가 썩은 핏물처럼 변하더니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되어 솟구쳤다. 연회장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귀족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얼어붙은 분수대는 마치 거대한 괴물의 뼈대처럼 흉측하게 변해버렸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마력은 축복이 아니라 살인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황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대공, 지금 선을 넘고 있다는 걸 아는가! 감히 짐의 연회에서 이런 해괴한 짓을!"
황제의 호통에 근위대가 서경을 포위했다. 수십 자루의 검 끝이 그녀의 목을 겨누었다. 서경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강진혁이었다.
그가 서경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앞으로 나섰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북부의 냉기가 근위대의 기세를 압도했다. 진혁이 마력을 개방하자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이 연회장을 짓눌렀다. 근위병들의 발치가 얼어붙으며 뒤로 밀려났다.
"선을 넘은 건 내 아내가 아니라, 마력을 살인 도구로 바꾼 그 자입니다."
진혁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그는 황제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아내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이 황궁의 계절을 영원히 겨울로 고정시키겠다. 농담이 아니야."
공기가 희박해졌다. 밀봉된 용기 안에서 압력이 치솟는 것처럼 긴장감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최도윤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으며 곁에 선 김무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때였다. 서경의 피부가 따끔거렸다. 고농도 마력이 공기를 가르는 마찰음이 들렸다. 시각적인 궤적은 없었으나 감각이 위험을 알렸다. '다섯 번째 계절'의 화살이었다. 보이지 않는 탄환이 그녀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강진혁 씨, 오른쪽!"
서경의 외침과 동시에 진혁이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던졌다. 챙! 금속음이 울리며 단검이 허공에서 튕겨 나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불꽃이 튀었다. 범인은 군중 속에 숨어 있었다.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귀족들이 출구를 향해 달려갔고 조명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서경은 이 혼란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미리 준비한 작은 주머니를 뜯어 공중에 뿌렸다.
"찾았다."
특수 제작된 시약 가루가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마력과 반응하면 형광빛을 내며 달라붙는 성질을 가진 가루였다. 허공에서 형광빛 시약이 불꽃처럼 튀어 올랐다.
범인은 연막을 터뜨리며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서경의 시약은 이미 목표를 맞췄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소매 끝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범인의 마력이 닿은 자리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도망쳐봐야 소용없어. 네 몸에 새겨진 건 시체의 증언이니까."
서경이 메스를 움켜쥐고 빛을 쫓으려 했다. 그러나 김무영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기계 부속품처럼 차가웠다. 진혁이 서경의 앞을 막아서며 김무영의 공격을 받아냈다. 두 남자의 충돌로 연회장 바닥이 내려앉았다.
"연서경, 먼저 나가!"
진혁이 소리쳤다. 서경은 망설였으나 지금은 범인을 쫓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드레스 자락을 찢어 발목을 자유롭게 만든 뒤, 미리 봐두었던 비밀 통로를 향해 달렸다.
복도는 눅눅한 이끼 냄새로 가득했다. 뒤에서 추격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서경은 숨을 몰아쉬었다. 손등의 검은 반점이 타는 듯이 뜨거워졌다. 저주가 마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무릎이 꺾일 것 같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통로 끝에서 진혁이 합류했다. 김무영을 따돌린 듯 옷자락이 군데군데 찢겨 있었다. 그는 쓰러지려는 서경을 단단히 붙잡았다.
"괜찮나?"
"범인을... 놓쳤소. 하지만 낙인은 남겼소."
서경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독한 시약을 무리하게 사용한 대가였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진혁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의 품은 뜨거웠다. 주변의 냉기와 대조되는 그 온기에 서경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기댔다.
안전가옥에 도착하자마자 서경은 깊은 탈진에 빠졌다. 마력이 빠져나간 자리를 저주의 통증이 채웠다. 그녀는 신음하며 진혁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강진혁 씨... 그 자의 소매가... 빛났소."
"알고 있다. 내가 봤어. 이제 쉬어라."
진혁의 낮은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그는 젖은 수건으로 서경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손길은 거칠었지만 조심스러웠다. 서경은 그의 규칙적인 심장 박동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잠결에 서경은 보았다. 빛나던 범인의 소매 끝. 그것은 단순한 자객의 옷이 아니었다. 황실의 문양이 새겨진, 아주 익숙한 예복의 소매였다. 머릿속에서 조각난 단서들이 하나로 맞춰졌다. 범인은 외부인이 아니었다. 그는 연회장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던 자들 중 하나였다.
손등의 검은 반점이 희미하게 박동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환청이 들렸다.
"선생님, 정신이 드세요?"
박하온의 목소리 같았다. 서경은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곳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은 잠든 서경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의 눈동자에는 타오르는 불꽃보다 더 뜨거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내일이면, 이 제국의 계절이 바뀔 것이다."
창밖에는 예보에 없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계절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서경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의식 속에서 마지막 목격자의 진술이 되살아났다.
'그의 소매 끝에... 핏빛 모란이 피어 있었어.'
그것은 최도윤의 가문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었다. 황실의 비밀 서고지기만이 가질 수 있는, 금지된 기록의 인장이었다. 범인은 최도윤이 아니었다. 최도윤은 무대를 만든 연출가였을 뿐, 진짜 칼을 든 자는 우리가 가장 믿었던 곳에 있었다.
서경이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강진혁 씨, 일어나시오."
진혁이 즉각 반응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경의 손끝이 지도를 가리켰다. 그곳은 황궁의 가장 깊은 곳, 지워진 역사가 잠든 서고였다.
"정의찬... 그분이 범인이오."
진혁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멘토이자 조력자였던 노인의 이름이 서경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도화선이 짧아졌다. 이제 폭발만이 남았다.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다시 몸을 던졌다. 진실을 향한 마지막 추격전이었다. 황궁 시계탑이 자정을 알렸다. 서경의 메스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번뜩였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안전가옥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황궁 서고의 깊은 지하, 한 노인이 낡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의 소매 끝에는 서경이 뿌린 시약이 형광빛으로 기괴하게 빛났다.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펜을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적어 내려갔다.
[제국의 14번째 겨울, 진실은 눈 아래 묻혔다.]
서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기괴한 침묵이었다. 공기 중에는 타는 듯한 마력의 냄새와 낮은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연서경아."
어둠 속에서 정의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경은 메스를 고쳐 쥐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지만 손은 결코 떨리지 않았다.
"당신의 위선을 부검하러 왔소, 선생님."
서고의 문이 굉음을 내며 닫혔다. 탈출구는 사라졌다. 진혁이 마력을 개방하며 앞장섰다. 그의 등 뒤로 서경의 차가운 투지가 서렸다. 정의찬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인자한 스승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는 망각의 심연이었다.
"진실이 항상 구원인 것은 아니란다."
그의 손이 허공을 젓자 서고의 책들이 날개돋친 새처럼 날아올라 그들을 덮쳤다. 종이들이 칼날처럼 변해 공기를 갈랐다. 서경은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책장 사이로 보이는 노인의 심장, 그곳에 모든 저주의 근원이 있었다.
"구원이 아니더라도 좋소. 저는 그저 사실을 기록할 뿐이오."
서경이 몸을 날렸다. 메스가 어둠을 가르고 진실의 심장을 향해 뻗어 나갔다. 서고 전체가 눈부신 백색 광채에 휩싸였다. 다섯 번째 계절의 위력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서경의 시야가 하얗게 멀어졌다. 하지만 손끝에는 분명한 감촉이 느껴졌다. 차갑고, 단단하며, 슬픈 무게가.
"찾았다."
모든 것이 멈췄다. 서고의 잔해 위로 차가운 달빛이 쏟아졌다. 서경은 피 묻은 메스를 쥔 채 숨을 몰아쉬었다. 정의찬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것은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명의 이름이 적힌, 투명한 마력의 기록물들이었다.
"이것이 제국의 진짜 역사란다.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노인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경은 기록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그 옆에는 강진혁의 이름도 있었다. 진실은 파헤쳐질수록 더욱 추악한 속살을 드러냈다.
"읽어라, 연서경. 그것이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니까."
진혁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경은 심호흡을 하고 첫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금기된 진실의 서막이었다. 창밖의 눈은 멈췄으나 제국의 진정한 겨울은 이제 시작이었다. 서경의 손등에 있던 검은 반점이 사라졌다. 저주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했다.
"해부는 끝났습니다."
서경이 나직하게 말했다. 눈에는 눈물 대신 서늘한 결의가 맺혔다.
"이제 집도할 시간이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서고를 빠져나갔다. 진실이라는 이름의 날카로운 칼날이 제국의 심장을 향해 겨누어졌다. 연서경은 강진혁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시오, 강진혁 씨. 끝까지."
진혁은 그녀의 손을 부서질 듯 꽉 쥐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눈 덮인 마당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을, 새로운 역사의 첫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