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안치소의 공기는 폐부를 찌르는 얼음 송곳 같았다. 사방을 메운 것은 포르말린의 톡 쏘는 악취와 오래된 이끼의 눅눅한 잔향이었다. 벽면에 서린 성에가 횃불 빛을 받아 기괴한 은빛으로 번뜩였다. 연서경은 장갑을 낀 손으로 메스의 감촉을 확인했다. 차가운 금속의 무게가 손바닥에 묵직하게 얹혔다.
그녀의 앞에는 '계절 살인'의 다섯 번째 희생자가 놓여 있었다. 시신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 속에 갇힌 박제처럼 보였다. 투명한 얼음 너머로 보이는 희생자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마력 폭주로 인한 급격한 결빙. 그것이 황실 수사대가 내린 공식적인 결론이었다. 하지만 연서경의 눈에 비친 시신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준비됐나."
어둠 속에서 강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안치소 입구의 육중한 철문에 몸을 기댄 채 복도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늘어져 시신의 발치까지 닿았다. 강진혁의 눈은 굶주린 늑대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잠입하기 위해 근위대의 순찰 경로를 완벽하게 파악해냈다.
"10분. 그 이상은 시신이 버티지 못하오."
연서경이 짧게 답하며 해부대 옆의 마력 중화 장치를 가동했다.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고요한 지하실을 채웠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며 기괴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얼음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신의 피부가 공기 중에 노출되자 희뿌연 김이 피어올랐다.
"밖은 내가 맡지. 그대는 죽은 자의 입을 열어."
강진혁이 검 손잡이를 툭 치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연서경의 전문성에 대한 기묘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연서경은 대답 대신 메스를 고쳐 쥐었다. 그녀의 신경은 끊어지기 직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
시신의 목 부위는 유독 짙은 청자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력이 집중되어 혈관이 터진 것처럼 보였다. 연서경은 조심스럽게 메스 끝을 희생자의 턱밑에 갖다 댔다. 서걱, 단단하게 굳은 피부가 갈라지는 소리가 고요를 깼다.
"마력의 흐름이 불규칙해. 이건 자연적인 폭주가 아니야."
연서경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끝에 전해지는 연골의 저항감은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조직 사이에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핀셋을 들어 절개된 부위를 벌렸다.
"뭐가 보이지?"
강진혁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그의 귀는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발소리를 쫓고 있었다.
"아직은요. 하지만 이 시체, 비명을 지르려 했던 게 아니에요."
연서경의 메스가 성대 뒤편의 깊숙한 조직을 파고들었다. 시신의 근육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메스를 튕겨내려 했다. 사후 강직과는 다른, 잔류 마력에 의한 거부 반응이었다. 연서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왼손으로 시신의 턱을 단단히 고정했다.
"억지로 입을 막으려 했어. 죽기 직전에."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시신의 기도 깊숙한 곳에서 은은한 금속 광택이 비쳤다. 그것은 마법의 흔적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의 파편이었다.
그때, 복도 멀리서 규칙적인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을 울리는 진동이 안치소 안까지 전달되었다. 근위대의 수색망이 좁혀져 오고 있었다.
"손님들이 오고 있군. 5분 남았다."
강진혁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는 이미 검을 반쯤 뽑아 든 상태였다. 쇳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거의 다 됐소. 조금만 더."
연서경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차가운 안치소 안에서도 그녀의 집중력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는 핀셋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조직 깊숙이 박힌 금속체를 집어 올리려 하자, 주변의 마력이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이건... 마력을 흡수하는 장치?"
그녀의 목소리에 경악이 서렸다. 핀셋 끝에 걸려 나온 것은 머리카락보다 얇은 금속 바늘이었다. 바늘 끝에는 미세한 톱니가 달려 있었고, 그 표면에는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찾았어. 이건 계절의 마력이 아니야. 인간의 탐욕이지."
연서경이 바늘을 들어 올리며 선언했다. 그것은 마법 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피해자의 마력 통로를 강제로 개방하는 장치였다. 범인은 마법을 부린 것이 아니라, 기계를 이용해 마력을 폭주하게 만든 것이다.
"서둘러. 문 앞이다."
강진혁이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밖에서는 근위대장의 날카로운 명령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치소 내부를 수색한다! 문 열어!"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안치소를 뒤흔들었다. 연서경은 재빨리 증거 바늘을 유리병에 담았다. 챙그랑, 작은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녀는 해부 도구들을 가방에 쑤셔 넣고 강진혁에게 신호를 보냈다.
"끝났소. 가시오."
강진혁은 문을 열어주는 대신, 반대편 벽면에 숨겨진 비밀 통로의 레버를 당겼다. 육중한 석재 벽이 소리 없이 뒤로 밀려났다. 연서경이 먼저 좁은 틈 사이로 몸을 던졌다. 강진혁이 뒤따라 들어오며 벽을 다시 닫았다.
간발의 차였다. 벽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 안치소 정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밀 통로는 좁고 습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연서경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풀리자 손끝이 떨려왔다.
"괜찮나."
강진혁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커다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차갑게 식었던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연서경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손이... 너무 차갑군요."
강진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연서경의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 거칠고 흉터 많은 손이었지만, 그 안에는 의외의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고맙소. 덕분에 살았소."
연서경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강진혁의 금빛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연서경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대가 진실을 찾아냈으니, 내 수고는 헛되지 않았어."
강진혁은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둔 따뜻한 약초차 통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연서경은 온기가 남은 통을 받아 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황궁이 숨긴 다섯 번째 계절을 우리가 끝낼 차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호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연서경은 유리병에 든 바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좁은 통로를 비추는 작은 빛 아래서 바늘 끝의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순간, 연서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 문양... 본 적이 있소."
그녀의 시선이 강진혁의 허리춤에 걸린 검으로 향했다. 검집에 새겨진 문양과 바늘에 새겨진 인장이 기괴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이건 당신의 형님이 사용하던 인장 아닙니까?"
연서경의 질문이 공허한 통로를 울렸다. 강진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눈빛에 서린 것은 경악인가,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던 자의 체념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강진혁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그는 연서경의 손에서 유리병을 뺏듯 낚아챘다. 바늘 끝에 새겨진 '검은 눈꽃' 문양. 그것은 북부 대공 가문의 핏줄만이 가질 수 있는 표식이었다.
죽은 자의 목소리는 이제 산 자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진실은 발견되었으나,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예상보다 훨씬 잔혹했다.
"이 바늘이 왜 희생자의 목에 박혀 있었는지, 이제 당신이 설명해야 할 것 같군요."
연서경의 차가운 시선이 강진혁을 꿰뚫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짧은 온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지하 통로 끝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황궁의 깊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계절의 비극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연서경은 강진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 증거가 최도윤의 손에 들어간다면, 강진혁은 물론이고 그녀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가시오. 여기서 더 지체하면 위험하오."
그녀는 강진혁의 손을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진실은 때로 구원이 아니라 파멸을 가져온다. 하지만 검시관의 메스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심장을 겨누게 된다 하더라도.
강진혁은 바늘이 든 유리병을 손에 꽉 쥐었다. 으스러질 듯한 힘에 유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연서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형님... 당신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그의 혼잣말은 눅눅한 벽면에 부딪혀 흩어졌다. 비밀 통로 너머, 황궁의 연회장에서는 여전히 화려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진실을 가린 채, 제국은 가장 아름다운 몰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서경은 통로를 빠져나오며 손등에 피어난 검은 반점을 내려다보았다. 저주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박하온에게 연락해야겠어."
그녀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조수 박하온이라면 이 기계 장치의 출처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황실 서고지기 정의찬이 숨긴 기록들과 이 바늘의 연관성. 그것이 이 거대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될 것이다.
강진혁은 연서경의 뒤를 따르며 자신의 그림자를 살폈다. 그림자는 이제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끝까지 가보지. 그 끝에 무엇이 있든."
두 사람은 어둠을 뚫고 황궁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멎은 자리에는 오직 얼어붙은 진실의 파편들만이 흩어져 있었다.
안치소 내부에서는 윤성호 형조판서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시체가 사라졌다고? 감히 누구 앞에서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하지만 이미 늦었다. 죽은 자는 입을 열었고, 그 목소리를 들은 자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최도윤의 집무실 창가에 선 김무영이 무심한 눈길로 지하 안치소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연서경이 놓치고 간 작은 메스 조각이 들려 있었다.
"사냥이 시작됐군."
김무영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제국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연서경은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메스를 고쳐 쥐었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황궁의 야경은 거대한 해부대처럼 보였다.
"자, 이제 누가 범인인지 해부해 볼까요."
그녀의 차가운 미소가 달빛 아래서 번뜩였다.
그것은 진실을 향한 광기이자, 죽은 자들을 위한 마지막 진혼곡이었다.
강진혁은 그녀의 곁에서 묵묵히 검을 고쳐 맸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지며 길게 늘어졌다.
그 끝에는 제국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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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경은 비밀 통로를 빠져나와 자신의 거처인 검시소로 향했다. 발소리를 죽이며 어둠 속을 걷는 그녀의 감각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진혁의 존재감은 거대한 산처럼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위태로웠다.
"강 대공."
그녀가 멈춰 서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말해."
"그 바늘에 새겨진 문양, 정말 당신 가문의 것이 맞습니까?"
강진혁은 대답 대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숨결이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하얀 안개로 변했다.
"북부의 눈꽃은 일곱 개의 잎을 가진다. 하지만 내 형님의 인장은 그중 하나가 꺾여 있지. 방금 그 바늘에 새겨진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깊은 슬픔에 가까웠다. 연서경은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형님은 3년 전 전장에서 전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전사 처리됐다. 하지만..."
강진혁이 말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전쟁터에서 얻은 수많은 흉터가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저 바늘이 형님의 것이라면, 형님은 죽지 않았거나... 누군가 형님의 유품을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연서경은 검시소 문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돌렸다. 끼이익, 기름칠이 잘 된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방 안은 평소처럼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기 중에는 미세한 침입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박하온아?"
그녀가 나직하게 불렀다. 구석에 있던 캐비닛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박하온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눈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선생님! 오셨어요?"
박하온이 달려와 연서경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녀는 강진혁을 보고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연서경의 뒤로 숨으며 속삭였다.
"누가 다녀갔어요. 제 방을 엉망으로 만들고, 선생님의 기록부도 몇 권 가져갔어요."
연서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도윤의 짓일까, 아니면 윤성호의 짓일까.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해부학 서적들을 살폈다. 다행히 그녀가 숨겨둔 핵심 일지는 무사했다.
박하온아, 정신 차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게 있다."
그녀는 유리병에 든 바늘을 박하온에게 건넸다.
"이 바늘의 재질과 제작 방식을 분석해. 황실 공방의 것인지, 아니면 북부의 기술인지 알아내야 한다."
박하온은 바늘을 받아 들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공포는 어느새 사라지고, 기술자로서의 호기심이 그 자리를 채웠다.
"와, 이건... 정말 정교한데요? 마력을 전도하는 합금이 섞여 있어요. 이런 건 황실 비밀 공방이 아니면 만들기 힘들 텐데."
"비밀 공방?"
강진혁이 끼어들었다. 그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최도윤이 관리하는 곳인가?"
"아마도요. 좌의정 어른이 매달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기록에는 '농기구 개량'이라고 되어 있지만요."
박하온이 코를 킁킁거리며 덧붙였다.
연서경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지고 있었다. 최도윤은 북부 대공 가문의 인장을 도용해 마력 폭주 장치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황궁 내 정적들을 제거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죄를 북부의 마력 탓으로 돌려 강진혁을 압박하온 했다.
"정교한 설계로군. 하지만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그녀는 메스를 들어 자신의 손등에 난 검은 반점을 가리켰다.
"이 저주도, 그 장치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내 아버지가강진혁 씨를 개조했을 때 사용했던 기술과도요."
강진혁은 자신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옷 너머로 느껴지는 봉합선의 감촉이 뜨겁게 타올랐다.
"내 몸이 제국의 범죄를 증명하는 장부라니. 참으로 위악적인 농담이군."
그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연서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좌의정의찬목이라도 따러 갈 건가?"
"아니요. 더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연서경이 책상 위의 지도를 펼쳤다.
"황궁 연회. 그곳에서 모든 진실을 공개할 것이오. 최도윤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그가 숨긴 가장 추악한 어둠을 드러내는 것이오."
"위험한 도박이군."
"도박이 아니라 수술이오.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정밀한 작업이오."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연서경은 박하온에게 분석을 서두르라고 지시한 뒤, 강진혁을 향해 돌아섰다.
강진혁 씨,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북부의 병사들이 아닌, 당신의 그 '검은 마력'이요."
강진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연서경의 눈 속에서 타오르는 결연한 의지를 읽었다. 그것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예우이자, 살아있는 자로서의 책임이었다.
"좋아. 그대의 집도에 기꺼이 내 힘을 빌려주지."
그는 연서경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연서경이 그의 손을 꽉 맞잡았다. 두 사람의 체온이 서로에게 전달되며, 차가운 검시소 안에 작은 온기가 피어올랐다.
그때, 창밖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징조처럼 들리는 그 소리에 연서경은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얼마 없군요."
그녀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마지막 준비가 시작되었다.
박하온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선생님, 이 바늘 안쪽에 아주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이건... 숫자 같은데요?"
연서경이 다가가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바늘의 아주 미세한 틈새에 '05-13'이라는 숫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다섯 번째 계절, 13번째 희생자."
연서경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것은 살인마의 일련번호였다. 최도윤은 이 살인을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하나의 실험이자 기록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놈."
강진혁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어졌다.
"이 숫자가 적힌 바늘이 더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죽어간 모든 이들의 몸속에."
연서경은 일지를 펼쳐 희생자들의 명단을 적어 내려갔다. 그녀의 펜 끝이 종이 위를 빠르게 달렸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하오. 그게 최도윤을 무너뜨릴 유일한 무기요."
밤은 깊어갔고, 검시소의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 진실을 향한 그들의 집요한 추적은 이제 제국의 근간을 뒤흔들 준비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 황궁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 평온함 아래에는 거대한 폭풍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연서경은 정복을 갖춰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녀의 가슴에는 황실 검시관의 휘장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가시오."
그녀가 문을 열며 말했다. 뒤를 따르는 강진혁의 발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황궁의 가장 높은 곳, 최도윤이 기다리고 있는 연회장이었다.
그곳에서, 다섯 번째 계절의 진실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드러날 것이다.
연서경은 손등의 반점을 장갑으로 가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미소 지었다.
"시작합시다. 마지막 해부를."
그녀의 목소리가 복도의 정적을 깨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