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주차장의 입구는 거대한 식도처럼 우리를 집어삼켰다. 콘크리트 벽면은 습기를 머금어 미끈거렸고, 천장에서는 정체 모를 차가운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져 바닥의 먼지를 진흙으로 바꿨다. 발소리가 울릴 때마다 곰팡이 섞인 흙내음이 폐부 깊숙이 박혔다. 도윤은 비틀거리는 이서하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쥐었다. 그녀의 패딩은 이미 진흙과 검붉게 말라붙은 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겨우 탈출해 파도에 밀려온 생존자들처럼, 일행은 어둠 속을 헤엄쳐 은신처 깊숙이 발을 들였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거기라면 일단 눈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도윤의 목소리가 텅 빈 지하 공간에 공허하게 흩어졌다. 뒤를 따르던 팀원들의 거친 숨소리가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밀려왔다.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창백한 백색광을 토해낼 때마다, 동료들의 얼굴이 유령처럼 하얗게 번뜩였다. 모두의 눈에는 독기가 서린 피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지상에서는 여전히 희미한 사이렌 소리와 먼 폭발음이 진동으로 전해졌다. 그것은 우리가 버리고 온 세상이 지르는 마지막 비명과도 같았다.
창고 형태의 임시 은신처에 도착하자마자 도윤은 방어 결계 장치 앞으로 달려갔다. 장치는 지난 전투의 여파로 전선이 내장처럼 삐져나온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금속 케이스는 열기에 녹아내려 흉측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떨리는 손으로 장치를 만지자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찔렀다. 이 장치가 숨을 쉬지 않는다면, 이곳은 낙원이 아니라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이 될 것이 뻔했다.
"김도윤 씨, 그만하고 좀 앉아요. 그러다 당신이 먼저 고꾸라지겠어."
이서하가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진 논바닥처럼 거칠었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찢어진 바지 위로 드러난 상처를 손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붉은 혈흔이 손가락 사이로 울컥 배어 나왔다. 도윤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구급상자를 열었다. 소독약의 톡 쏘는 냄새가 좁은 공간에 퍼지며 코끝을 자극했다.
"결계가 불안정해요. 누가 좀 도와줄 사람 없습니까?"
도윤의 요청에 돌아온 것은 끈적한 침묵뿐이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한 팀원이 젖은 장갑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졌다. 금속 징박힌 장갑이 콘크리트 바닥을 치며 날카로운 짤랑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유리잔이 박살 나듯 우리 사이의 신뢰가 깨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예요? 우린 지금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고요."
그가 쏘아붙였다. 눈동자에는 도윤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벼랑 끝에 몰린 짐승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이 장치를 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이대로 노출되면 원류파의 추적을 피할 수 없어요."
도윤은 차분하게 논리를 정리하려 애썼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머릿속의 데이터는 지금 상황이 최악임을 끊임없이 경고했다. 생존 확률은 매 분마다 소수점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 잘난 수호자의 힘은 어디다 국 끓여 먹었습니까? 김도윤 씨, 당신 손에 든 그 사슬 말이야. 그걸 쓰면 이딴 고물 장치 없어도 결계 정도는 떡을 칠 텐데, 왜 우리를 이 고생을 시키는 거냐고!"
다른 팀원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외침은 좁은 지하 창고를 가득 채우며 천장을 울렸다. 이서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녀 역시 반박할 기운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비난은 화살이 되어 도윤의 가슴에 박혔다. 손에 쥔 고대의 유산은 양날의 검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할 태양일 수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태워버릴 지옥불이 될 수도 있었다.
"그 힘을 함부로 쓰는 건 위험합니다. 시스템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어요."
도윤의 대답은 그들에게 공허한 변명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당장의 안식, 이 지옥 같은 전쟁터로부터의 탈출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미래의 균형 따위는 배고픈 이들에게 들려주는 먼 나라의 전설에 불과했다.
"균형? 웃기지 마. 우리가 다 죽고 나면 그 잘난 균형이 무슨 소용인데? 당신은 그냥 그 힘을 쥐고 왕 노릇 하고 싶은 거 아냐? 우리를 방패막이로 세워놓고 말이야!"
그의 말은 독설이 되어 도윤의 뺨을 후려쳤다. 주먹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쥐어졌다. 도윤은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분노보다는 슬픔이 먼저 가슴을 파고들었다. 같은 배를 탔다고 믿었지만, 거친 파도 앞에서 각자가 붙잡은 구명보트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노를 젓고 있었다.
"말 조심해. 도윤 씨가 아니었으면 우린 벌써 지상에서 시체가 됐을 거야."
이서하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윤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 닿는 체온은 평소보다 훨씬 낮았다. 마치 얼음 조각을 만지는 것 같은 서늘함이 전해졌다.
도윤은 결심했다. 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위태로운 낙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을 꺼내야만 했다. 그는 가슴 속에 숨겨둔 수호자의 사슬을 끄집어냈다. 어둠 속에서 사슬은 은은한 청백색 광휘를 내뿜으며 박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심장 소리처럼 도윤의 손바닥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사슬을 쥐는 순간, 정수리부터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얼음장 같은 전류가 온몸을 훑었다. 혈관 하나하나가 타들어 가는 듯한 뜨거운 통증이 동시에 몰려왔다. 도윤은 비명을 삼키며 결계 장치에 손을 얹었다. 몸에 흐르는 마력이 사슬을 매개로 장치 속으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손끝이 마비되는 저릿함이 느껴졌다. 혀끝에는 비릿한 쇠 맛이 감돌았다. 입천장이 바짝 메말라 숨을 쉴 때마다 칼날을 삼키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핏빛으로 번지며 잔상이 남았다. 그 잔상 속에서 도윤은 보았다. 먼 옛날, 이 도시의 기초를 닦았던 첫 수호자들이 마주했던 마지막 풍경을.
그들은 영웅이 아니었다.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땔감으로 던져 넣은 소모품들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 위로 그들의 절망이 서린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가 막으려던 것이, 우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키려던 도시의 무게에 짓눌려 먼지처럼 사라져 갔다.
코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가슴을 때렸다. 도윤은 이를 악물고 마력을 쏟아부었다. 마침내 장치에서 웅 하는 낮은 진동음이 울리며 푸른 빛의 막이 은신처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됐어... 이제 안전할 겁니다."
도윤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무릎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이서하가 얼른 다가와 부축했다. 그녀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얼어붙은 몸을 조금씩 녹여주었다.
"바보같이... 왜 이렇게까지 무리해요?"
이서하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도윤의 코피를 닦아주었다. 손길은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도윤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제가 선택한 균형이니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결계가 안정되자 팀원들의 날 선 분위기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도윤은 떨리는 손을 숨기며 배낭에서 휴대용 버너와 비상식량을 꺼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를 채워줄 따뜻한 온기였다.
"다들 이쪽으로 오세요. 일단 먹고 쉬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쉽시다."
도윤의 제안에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인 이도 있었지만, 끓는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자 다들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도윤은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 스프를 털어 넣었다. 짭조름하고 매콤한 향기가 순식간에 차가운 지하 공기를 밀어냈다.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국물이 손바닥을 타고 온기를 전해주었다.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자 뜨거운 열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을 데웠다. 비로소 살아있다는 실감이 났다. 옆에 앉은 이서하도 후후 불며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게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요?"
그녀가 젓가락을 멈추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작았지만, 우리 사이의 얼어붙은 벽을 허무는 햇살 같았다.
"그러게요. 서울 최고의 맛집이 여기 있었네."
한 팀원이 농담을 던졌다. 아까 도윤에게 소리를 질렀던 그였다. 그는 무안한 듯 고개를 숙이고 국물을 마셨다.
"근데 김도윤 씨, 아까 그 힘 쓸 때 말이에요. 진짜 무슨 터미네이터 같았어요.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다니까."
다른 팀원이 과장된 몸짓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일행은 서로의 지친 얼굴을 보며 아주 짧게, 하지만 진심으로 웃었다. 지상에서 들려오는 폭격 소리가 잠시 잦아든 틈을 타, 은신처 안에는 라면 먹는 소리와 옅은 농담들이 채워졌다. 이것은 폭풍의 눈 속에 존재하는 작은 낙원이었다.
하지만 낙원은 영원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은신처 내부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휴대용 난로에서 퍼지는 건조한 열기만이 우리가 깨어 있음을 알려주었다. 도윤은 구석에서 장비를 정리하는 한 팀원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까부터 짐을 챙기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정말 가시겠습니까?"
도윤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배낭 끈을 조였다. 그의 어깨는 전투 자세로 펴져 있었지만,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난 당신처럼 숭고한 목표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살고 싶을 뿐이야. 여기 있으면 결국 그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 죽을 것 같거든."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플라스틱 가방을 집어 들며 도윤을 차갑게 응시했다.
"당신이 선택한 그 길이 결국 영웅 놀이인지, 아니면 새로운 독재자의 탄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거기 끼고 싶지 않아."
"이해합니다. 떠나도 좋아요. 하지만 밖은 위험합니다."
도윤은 그를 붙잡지 않았다. 각자의 생존 방식은 존중받아야 했다. 그는 팀원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쥔 유산이 결국 자신을 어떤 괴물로 만들지 도윤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김도윤 씨, 당신은 결국 그 유산을 들고 새로운 왕이 되려는 거 아닙니까? 이 도시를 당신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말이야."
그가 비꼬듯 던진 말에 도윤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 말고, 문지기 정도면 족합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그리고 아무도 함부로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 문지기요."
도윤의 대답에 그는 콧방귀를 뀌며 철문으로 향했다. 무거운 철문이 열리자 지상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은신처 안으로 들이닥쳤다. 따뜻했던 공기는 순식간에 흩어졌다.
"문지기라... 그 문에 당신 자신이 갇히지 않길 빌지."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다 이내 사라졌다. 은신처 안에는 다시 남은 이들만 남았다. 도윤은 닫힌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려 왔다.
"도윤 씨, 괜찮아요?"
이서하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걱정과 신뢰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도윤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이제 제법 따뜻해져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니까요."
그는 손에 쥔 사슬을 다시 한번 꽉 쥐었다. 사슬에서 미약한 맥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에게 경고하는 듯했다. 이 길을 계속 가는 한,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도윤이 멈추는 순간, 이 도시는 정말로 끝없는 겨울 속으로 침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예전처럼 평범했던 그 서울로."
남은 팀원 중 한 명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물었다. 목소리에는 간절한 희망과 깊은 회의가 섞여 있었다. 도윤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형광등은 이제 깜빡임을 멈추고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돌아가야 할 곳이 남아 있다면, 반드시 돌아갈 겁니다."
그의 대답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았다. 일행은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긴 밤을 견뎌냈다. 지상에서는 여전히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이 지하 낙원에서의 결심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도윤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첫 수호자의 마지막 시야가 스쳐 지나갔다. 폐허가 된 도시 위로 쏟아지던 눈송이들. 그리고 그 속에서 홀로 서 있던 누군가의 뒷모습. 도윤은 자신이 정말로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미 그들이 걸었던 멸망의 길을 똑같이 밟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두려움 속에서 자문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그는 이 유산을 시스템의 도구로 쓰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대가가 파멸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의 마지막 겨울을 끝낼 것이다. 손바닥에 새겨진 사슬의 문양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결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철문 너머로 다시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의 빛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도윤은 이서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서로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이제 정말로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음을,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