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비명을 질렀다. 서울 상공을 뒤덮은 푸른 광막이 종잇장처럼 찢기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쏟아졌다. 도시수호파의 결계 주술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공중에서 비산한 결과였다. 청보랏빛 섬광이 얼어붙은 빌딩 숲을 난도질하듯 훑고 지나가며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서북쪽 구역에서는 원류파의 중화기가 뱉어내는 포성이 대기를 짓눌렀다. 한서준은 무너진 지하도 입구의 콘크리트 잔해 뒤로 몸을 바짝 구겨 넣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돌가루가 지면의 진동을 타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통신기에서는 금속을 긁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양 진영 지휘부의 고함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서준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송신 버튼을 짓눌렀다.
"지금 북쪽 라인을 더 밀면 안 돼요! 지하 구조물이 버티지 못한다고요! 거긴 고대 장치가 매설된 핵심 구역이란 말입니다!"
서준이 쉰 목소리로 내뱉었지만, 돌아온 것은 날 선 의심뿐이었다.
"그 정보, 출처가 확실해, 서준?"
최가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건조하고 차가웠다. 그녀의 말 뒤로 거대한 폭발음이 겹치며 통신이 잠시 끊겼다. 곧이어 원류파 채널에서 박시온의 낮은 저음이 끼어들었다.
"이 타이밍에 교전 중지를 요청하다니. 서준 씨, 당신 지금 어느 쪽 줄을 잡고 있는 겁니까? 우리 계획을 방해하려는 수작이라면 곤란해요. 당장 명령에 따르세요."
"둘 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제발, 내 말 좀 들으라고요! 지금 지하에서 이상 반응이 시작됐단 말입니다!"
서준은 통신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도시는 그저 점유해야 할 영토나 장기판의 칸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준의 감각은 전혀 다른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발밑 깊은 곳에서 거대한 심해어가 신음하며 바닥을 긁는 듯한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포격의 여파와는 결이 달랐다. 도시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날뛰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피부가 몸집보다 한 치수 작은 옷처럼 팽팽하게 옥죄어 왔다. 서준은 가슴을 움켜쥐며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이 공명음을 내며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폭풍 전야의 해안가처럼, 대기 중의 모든 에너지가 지하의 한 점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서준은 비틀거리며 어두운 지하 진입로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폐부를 찌를 듯 차가워졌다. 입을 열 때마다 하얗게 솟아오르는 숨이 시야를 가렸다. 벽면에는 꿈속에서나 보았던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푸른 빛을 내며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이 도시를 지탱해온 거대한 설계도이자, 맥동하는 신경계였다.
"서준아! 위험해, 들어가지 마!"
뒤쫓아온 이서하가 그의 팔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녀의 손등은 이미 전투의 흔적인지 붉은 찰과상과 먼지로 엉망이었다. 이서하의 눈동자에는 공포와 걱정이 뒤섞여 일렁였다. 서준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벽면의 빛나는 문양을 가리켰다.
"이거 안 보여요? 지금 도시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라고요. 저들이 쏘아 올린 불꽃이 도화선이 됐어요."
"파동 패턴이 북서 포격 주파수랑 안 맞아."
이서하가 단말기를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오작동이긴 한데, 이건 우리 쪽 기술도 아니고 원류파 놈들 주술도 아니야.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지하를 가득 채운 에너지는 그 어떤 진영의 색채도 띠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태초의 바다처럼 거칠고 순수했으며, 동시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포악한 기세를 내뿜었다. 서준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 박동과 지하의 맥동이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서준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벽면의 문양들은 더 선명하게 타올랐다. 마치 그가 도시의 신경계와 직접 연결된 전선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아니다'가 아니라… 뭔가 더 겹쳐져 있어요. 마치 도시가 숨을 헐떡이는 느낌이에요. 제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려고 한다고요."
"느낌 말고 수치를 줘! 그래야 위에 보고를 해서 교전을 멈추든 말든 할 거 아냐!"
"수치로 안 잡히는 게 문제라고요!"
서준은 소리를 지르며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금속 계단이 뒤틀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폭주의 충격파가 통로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서준은 부서진 잔해 사이로 몸을 던졌다. 어깨가 귀까지 올라갈 정도로 긴장이 극에 달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그의 온몸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지하 중심부, 고대 장치가 안치된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을 때 서준은 숨을 멈췄다. 장치는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리지 못한 채 굉음을 내며 헛돌고 있었고, 그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주변의 모든 것을 하얗게 얼려버리고 있었다.
"멈춰… 제발 멈추라고!"
한서준은 장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의 '유산'이라 불리는 힘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양 진영이 주입했던 안전 프로토콜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에너지의 흐름에 개입하려 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을 맨손으로 막아서는 것과 같은 무모한 짓이었다.
힘을 당기는 순간, 혈관 속으로 용암이 흐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코끝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쳤다. 입안에는 씁쓸한 쇠맛이 감돌았고,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서준은 구역질을 참으며 차가운 바닥을 짚었다.
하지만 차단하려던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서준의 분노와 절박함이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촉매가 되어버렸다. 주변 구조물이 일제히 갈라지며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파가 번져 나갔다. 지상에서는 건물의 유리창들이 일제히 박살 났고, 사람들의 비명이 지하 깊은 곳까지 메아리쳤다.
통신기에서는 여전히 양 진영의 지휘관들이 서로를 탓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원류파 놈들이 장치를 건드린 게 분명해! 즉시 전 출력을 개방해라!"
"도시수호파의 결계가 폭주하고 있다! 저들을 섬멸하지 않으면 도시가 얼어붙을 것이다!"
한서준은 피 섞인 침을 내뱉으며 통신기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
"선택했어요. 둘 다 틀렸다는 쪽으로."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통신망 전체를 장악하듯 무겁게 울려 퍼졌다.
"이 힘, 더 이상 당신들 시스템 패치하는 데 쓰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건 도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뿐이잖아."
서준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장치의 흐름을 뒤틀어버렸다. 폭주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켰다. 신체가 붕괴하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잠시 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광휘가 공동을 가득 채우며 모든 감각을 삼켜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서준은 임시 대피실의 낡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은 온통 먼지와 어둠뿐이었고, 구석에 놓인 작은 전기 난로만이 희미한 주황빛을 내뿜고 있었다. 찢어지고 피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진 서준은 누군가 가져다 놓은 두툼한 후리스 방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젖어서 얼어붙었던 양말을 벗어 던질 때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야, 너 그 꼴로 계속 다닐 거야? 영웅 이미지 다 망가졌네."
이서하가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녀 역시 만신창이였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서준의 옆에 나란히 앉아 보온병 뚜껑에 담긴 뜨거운 라면 국물을 건넸다.
"일단 국물부터 마셔. 도시 구할 사람이 저체온증으로 실려 가면 웃기잖아."
서준은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받아 한 모금 삼켰다. 짠맛과 함께 따뜻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굳어있던 몸을 녹였다. 보온병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두 사람 사이의 서늘한 공기를 부드럽게 채웠다. 다 쓰러져 가는 천장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위태로운 빛을 내고 있었지만, 이 작은 공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낙원처럼 느껴졌다.
"…고마워요, 서하 씨."
"고맙긴. 근데 아까 지하에서 했던 말, 진심이야? 양쪽 다 틀렸다는 거."
한서준은 난로 쪽으로 손을 내밀며 잠시 침묵했다. 주황색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서 일렁였다.
"…대신 만약에, 진짜 문제의 시작이 나였다면 어떨 것 같아요? 아까 그 폭주, 내 감정에 반응해서 일어난 거였어요. 내가 트리거였다고요."
이서하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툭 내뱉듯 대답했다.
"그럼 더 조심해서 해결하면 되지. 시작이 누구였는지보다, 끝을 누가 책임지느냐가 중요하잖아. 안 그래?"
그녀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대답에 서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가슴 속을 짓누르던 죄책감이 아주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그는 새로 갈아입은 방한복의 포근한 촉감을 만지작거리며 결심을 굳혔다. 더 이상 누군가의 장기말이 되지 않겠다고.
휴식은 짧았다. 지하 어딘가에서 다시 낮은 진동이 울려왔고, 매캐한 먼지 냄새가 공기 중에 섞여 들었다. 한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기를 다시 켰다. 이번에는 양쪽 지휘부의 채널을 동시에 열었다.
"안정화 루트를 찾은 것 같아요. 근데 장치의 임계점이 너무 높아서 양쪽의 출력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협조하시겠습니까?"
통신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이내 최가을과 박시온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우리 쪽 출력만 올리면 충분하다고 했잖나. 상대 진영의 에너지가 섞이면 위험해."
최가을의 반박에 서준은 침착하게 거짓말을 섞었다.
"이건 고대 장치의 특성이에요. 양극단의 에너지가 서로를 상쇄해야만 멈춥니다. 자세한 데이터는 현장에서 직접 보여드리죠. 지금 당장 지정한 좌표로 에너지를 송출하세요."
서준은 통신을 끊고 이서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언제 그렇게 말 돌리는 스킬 찍었냐? 둘이 같이 쏘면 장치가 터질지도 모르잖아."
"터지는 게 아니라, 서로 맞물려 멈추게 만들 거예요. 그 틈에 난 진짜 진앙으로 가서 장치를 분리할 거고요."
한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피실 문을 열었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들 거짓말 하나쯤은 찍어야 하더라고요."
문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서준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천장의 형광등이 그의 심장 박동과 정확히 같은 리듬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양 진영이 동시에 출력을 올리는지, 하늘이 다시 한번 눈부신 섬광으로 뒤덮였다. 서준은 배신의 타이밍을 재며,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통로 안으로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