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unuyor

제6장: 강요된 궤도

민서의 콧속으로 소독약의 비릿한 금속성 냄새가 파고들었다. 눈을 뜨기도 전에 폐부가 먼저 차갑게 식었다. 천장의 형광등은 일정한 박자를 잃은 채 파르르 떨리며 신경질적인 소음을 냈다. 마치 수명이 다한 곤충이 마지막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눈꺼풀조차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사지는 굳지 않은 시멘트 속에 처박힌 듯 매트리스 아래로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 가운데 하얗게 탈색된 천장의 곰팡이 얼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곧이어 귓가에서 기계적인 비프음이 규칙적으로 고막을 두드렸다.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이 혈관을 타고 서늘한 이물감을 흘려보낼 때마다 민서는 결계가 무너지던 순간의 그 기괴한 감각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적막이 지배하던 방 안에서는 얼음판이 갈라지는 소리처럼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단정한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짓누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민서는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목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비명을 질렀다. 결국 그는 눈동자만을 굴려 침대 옆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쫓았다. 그곳에는 최가을이 서 있었다. 그녀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단된 정장 차림으로, 서류철을 가슴에 안은 채 무표정하게 민서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빛을 반사하지 않는 검은 유리구슬 같았고, 그 시선이 닿는 곳마다 민서의 피부 위로 닭살이 돋아났다. "정신이 듭니까? 당신이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서울의 기온은 영하 십오 도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우리가 치워야 할 시체와 잔해는 이미 통제 범위를 넘어섰고요." 최가을의 목소리는 건조한 낙엽이 돌바닥을 긁는 듯했다. 민서는 마른침을 삼키려 했으나 목구멍이 타버린 듯 따가웠다. 그는 갈라진 입술을 간신히 떼어 쇳소리를 내뱉었다. "여기가... 어디죠? 그리고 같이 있던 이서하 씨는요?" "이서하 요원은 이미 현장 보고를 끝내고 복귀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걱정해야 할 건 타인의 안부가 아닙니다." 최가을은 품고 있던 서류철을 열어 민서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당신의 손끝에 남은 그 불온한 흔적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이죠." 종이 위에는 민서의 인적 사항부터 시청에서 분석했던 데이터, 심지어 아버지가 겪었던 과거의 사고 기록까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눅눅한 프린터 잉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민서는 자신이 발가벗겨진 채 한겨울 광장에 세워진 듯한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이 조직이 자신을 얼마나 집요하게 파헤쳤는지 깨닫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서류의 마지막 장에는 '임시 협력 계약서'라는 제목이 굵은 글씨로 박혀 있었고, 그 아래로는 민서의 숨통을 조이는 독소 조항들이 개미 떼처럼 나열되어 있었다. 민서는 떨리는 손을 들어 서류를 가리켰다. "이건... 계약이 아니라 협박이잖아요. 내가 왜 이런 것에 서명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봐요." 최가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서류를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선택지는 단 두 개입니다. 우리와 일하며 그 기이한 능력을 길들이는 법을 배우든가, 아니면 무단으로 고대 에너지를 접촉한 범죄자로 분류되어 서울 밖으로 추방당하든가." "서울 밖으로 나가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요. 이 날씨에 그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민서가 항의하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으나, 복부의 통증 때문에 다시 침대로 무너졌다. "그러니까 서명하세요." 최가을의 뒤에 서 있던 보좌관이 차갑게 거들었다. "당신의 가족, 특히 그 대학원생 동생의 신변이 걱정된다면 더더욱 현명하게 굴어야 할 겁니다." 민서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손가락 끝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땀만이 차갑게 식어갈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사회라는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버린 작은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존심이라는 껍데기를 스스로 벗어던져야 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펜을 집어 들었다. 종이의 까슬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그것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서명을 마치자마자 최가을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를 낚아챘다. 그녀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승리자의 여유가 담긴 미소가 스쳤다. "현명하군요. 이제 당신은 도시수호파의 관리 대상이자 임시 요원입니다. 몸을 추스르는 대로 훈련 기지로 이동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민서는 그녀가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그러나 대답해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의무실의 낡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윙윙거리는 소음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자신이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음을 직감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이 차가운 방보다 더 혹독할 것임을 예감하며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며칠 뒤, 민서가 도착한 곳은 서울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호시설이었다. 과거 지하철역으로 쓰이다 버려진 공간을 개조한 듯한 기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콘크리트 벽면에서는 습한 냉기가 끊임없이 배어 나왔고, 천장에 노출된 배관들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혈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금속 장비 부딪히는 소리와 훈련생들의 날카로운 기합 소리는 이곳이 일상의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공간임을 증명했다. 민서에게 배정된 숙소는 복도 끝자락의 작은 방이었다. 다른 훈련생들의 방보다 좁고 낡았으며, 문틈 사이로는 먼지 섞인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그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이불을 보며 자신이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복도를 지나가는 훈련생들의 시선은 노골적이고 날카로웠다. 그들은 민서를 결계 사고를 일으킨 문제아로 여기고 있었으며, 낙하산처럼 굴러들어온 그를 조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취급했다. "저게 그 사고 낸 놈이야? 생각보다 비실비실하네. 우리 같은 애들이 몇 년을 굴러야 얻는 기회를 단번에 낚아채다니, 운 하나는 끝내주나 봐." 복도를 지나가던 한 훈련생이 비아냥거리며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갔다. 민서는 그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짐을 정리했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분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때, 훈련장 입구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찢어질 듯 울려 퍼졌다. 거구의 체격을 가진 교관이 나타나 훈련생들을 집합시켰다. 교관의 눈은 사나운 맹수처럼 번뜩였고, 그는 민서를 발견하자마자 가래 끓는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기대는 하지 마라. 계약서에 이름 적었다고 다 같은 라인에 서는 건 아니니까. 네놈이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그 종이 쪼가리는 바로 쓰레기통으로 갈 거다." 교관이 민서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민서는 교관의 압박에 주눅 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답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단순히 보호받으러 온 게 아닙니다." "말은 잘하는군. 그럼 바로 시작하지. 오늘 네놈이 받을 훈련은 코드명 'Return JSON'이다. 우리 조직의 기초이자 가장 치명적인 테스트지." 교관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민서를 훈련장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훈련장 중앙에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진 금속 격자들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공중에는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복잡한 데이터 패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Return JSON' 훈련은 마력을 사용하여 흩어진 정보 조각들을 감지하고, 이를 정해진 형식에 맞춰 재구성하여 시스템에 되돌려주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계산 능력을 넘어,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데이터와 동기화시켜야 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민서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혈관 속을 흐르는 그 낯설고 차가운 감각을 일깨우려 애썼다. 마력을 활성화하자마자 사지 말단부터 얼어붙는 듯한 냉기가 치솟았다.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피부 아래를 동시에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으나, 입안에서는 이미 비릿한 금속 맛이 번지기 시작했다. 마력의 물리적 대가는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에너지를 한 단위 쓸 때마다 그의 체온은 급격히 떨어졌고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패턴을 끝까지 완성해! 여기선 결과만이 네 가치를 증명한다. 멈추는 순간, 네놈의 신경계는 이 시스템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타버릴 거다!" 교관의 호통이 귓가를 때렸다. 민서의 시야 주변부가 어두워지는 터널 비전 현상이 나타났다. 코끝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려 바닥의 금속 격자를 적셨다. 그는 자신의 의지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근육 경련이 심해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때, 옆 사로에서 훈련을 받던 이서하가 민서의 상태를 살피더니 교관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교관님, 첫날부터 풀 코스트를 강제하는 건 규정 위반 아닙니까? 이 사람은 아직 마력 적응기도 거치지 않았어요. 죽일 셈인가요?" 교관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서하를 노려보았으나, 그녀의 단호한 기세에 잠시 주춤했다. "이건 최가을 팀장의 특별 지시다. 이놈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한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부서지면 무슨 소용이죠? 실패하면 같이 책임지는 것도 아니면서 너무 무책임하시네요." 이서하는 그렇게 말하며 민서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부축했다. 민서는 그녀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잠시 정신이 들었으나, 여전히 온몸을 휘감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이서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걱정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서하는 교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민서의 마력 흐름을 강제로 차단해주었다. 그제야 민서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훈련은 중단되었고 교관은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났다. 민서는 자신이 첫 훈련에서 낙제점을 받았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는 이서하의 도움을 받아 비틀거리며 숙소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는 내내 다른 훈련생들의 수군거림이 등 뒤를 찔렀다. 그러나 이서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묵묵히 그를 부축했고, 민서의 방 앞에 도착해서야 조심스럽게 그를 침대에 눕혔다. 방 안은 좁고 초라했지만, 훈련장의 그 살벌한 공기와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이서하는 어디선가 가져온 따뜻한 물병과 포장도 뜯지 않은 컵라면, 그리고 몇 알의 진통제를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그녀는 말없이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켰다. 잠시 후 매트리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미지근한 온기가 민서의 얼어붙은 몸을 조금씩 녹이기 시작했다. "전기장판 스위치는 여기 있어요. 너무 올리면 또 열이 확 올라오니까 조심하고요. 이거 먹고 약도 챙겨 먹어요." 이서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서는 얇지만 부드러운 이불을 끌어당기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거 다들한테 주는 건 아니죠? 저만 특별 대우받는 거면 곤란한데." 이서하는 짧게 실소를 터뜨리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특별 대우는 무슨. 그냥 내가 남는 거 주는 거예요. 첫 수호자들 때는 이런 거 꿈도 못 꿨다더라고요. 그땐 사람을 정말 쓰다 버리는 부품처럼 굴렸다던데, 그나마 지금은 세상이 좋아진 셈이죠." "첫 수호자들이요? 그들에 대해서 더 아는 게 있습니까?" 민서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나도 전해 들은 것뿐이에요. 서울의 결계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사라졌대요.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고요. 그러니까 당신도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당신마저 사라지면 내 보고서가 복잡해지니까." 이서하는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섰다. 혼자 남겨진 민서는 컵라면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짭짤한 냄새를 맡으며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며 위장이 따뜻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진통제가 목을 타고 내려가 전신의 통증을 둔탁하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침대 매트리스가 자신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포근한 탄성을 느끼며, 그는 이 작은 방이 주는 위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호의가 자신을 더 효율적인 도구로 쓰기 위한 조직의 관리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지하 시설 특유의 저주파 진동이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먼 곳의 배수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민서는 쉽게 잠들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낮에 훈련 화면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던 '첫 번째 수호자'들의 명단을 떠올렸다. 그 수많은 이름 중 하나가 유독 그의 기억 속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서재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낡은 사진첩 뒤에 적혀 있던 이름과 일치했다. 그 이름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이 거대한 음모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민서는 이불 속에 갇힌 자신의 체온과 바깥 공기의 온도 차를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자신이 단순히 이 파벌 싸움의 희생양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아니, 끝나지 않게 만들 것임을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여기서 끝나진 않아. 날 쓰려면, 나도 여길 써먹을 거야. 첫 수호자들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민서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는 통증이 지날 때마다 욱신거리며 올라오는 미열을 견디며 간신히 잠에 들려 했다. 그러나 눈을 감기 직전, 훈련 데이터 속에 숨겨져 있던 그 이름의 주인이 자신의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민서는 번쩍 눈을 떴고, 어둠뿐인 방 안에서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울리고 있음을 느꼈다. 창밖의 겨울은 더욱 깊어만 갔고, 서울의 지하에서 시작된 이 작은 균열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폭풍으로 변모할 준비를 마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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