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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잔에 비친 계수나무 그림자, 거울 속 자취를 살피다

석양이 계피향을 머금은 저녁바람을 감싸 창살에 부딪칠 무렵, 난월루 삼층의 양지 유리등은 모두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 주홍색 들보 위의 동유 냄새를 감싸 내려와 손님들의 옷감에 수놓은 금실 무늬를 마치 조각난 별들이 흔들리는 듯 비추었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서늘함과 등불이 얼굴을 지지는 열기가 한데 부딪쳐 사람들의 목덜미 털이 이유 없이 곤두서게 했다. 악정주는 빨아서 부드러워진 담청색 장삼을 입고 창가 그늘에 서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는 따뜻하고 매끄러운 백옥잔을 꼭 쥐고 있었는데, 잔 가장자리에 묻은 반 방울의 계화주는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침향, 고량주의 강한 향기와 기녀들의 관자놀이에 묻은 장미 분향이 뒤섞여 콧속으로 파고들었고, 비파로 연주하는 〈서강월〉은 애절하고 끈적하게 들보를 감돌며 여운이 귀를 간지럽혔다. 그는 몰래 정담결을 운전하며, 주변의 감지가 마치 찬 못에 녹아 퍼지는 물결처럼 소리 없이 흩어져 나갔다. 이는 형률사에서 비전으로 전해지는 감미지법으로, 진기의 강약을 분별하고 감정의 미세한 파동을 엿볼 수 있어, 그가 이번에 입경하여 탐색하는 첫 번째 의지처였다. 지금 그가 대외적으로 드러낸 신분은 시골에서 올라온 청렴한 재사 악지과로, 표면적으로는 관직 배정을 기다리며 입경한 것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각 문파가 천명방에 의존하는 정도를 살피는 것이었다. 삼십오 일 안에 천명서 모권의 '차명권' 산법 증거를 얻지 못하면 형률사와 만경표국은 모두 '역방'의 죄명을 뒤집어쓰게 되고, 전종의 모든 제자의 수행 자격이 완전히 박탈되어 돌이킬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감지가 홀 안의 수십 명을 스캔하며, 그의 손가락 끝은 무의식적으로 잔 가장자리에 닳아 생긴 가는 자국을 문지르고 있었고, 혀뿌리는 정신 소모로 인해 은은한 떫은맛이 올라왔다. 마음속으로는 규칙에 따라 빠르게 표시를 해 나갔다. 열에 일곱, 여덟은 되는 손님들의 허리, 손목, 또는 머리쌍에 천명방이 배포한 거울 장신구를 차고 있었는데, 동경, 옥경, 유리경 등 형태는 각기 달랐지만, 거울 몸체에는 모두 아주 희미한 동근의 금빛 광휘가 발산되고 있어 마치 여름밤 풀숲에 떠다니는 반딧불처럼, 가늘고 조각나게 빛났고, 감지 가장자리를 스칠 때는 마치 가는 금모래 같은 미세한 간지러움을 동반했다. 주인석 옆에 보랏빛 비단 포복을 입은 젊은 공자의 손목에 찬 양지옥경은 반 자 길이의 희미한 빛을 투사하여 떠다니는 분홍빛, 자줏빛 기운의 무늬를 비추고 있었고, 주위에는 사람들이 한 무리 지어 탄성을 자아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의 측근들의 옷감에는 천공방의 운문 휘장이 수놓여 있었고, 진기의 흐름과 거울 장신구의 공명은 박힌 장부처럼 안정적이어서, 이는 사가의 핵심 인물임을 드러냈으며, 천명방에 대한 의존이 이미 수행의 근골에 새겨져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남쪽 모퉁이에 회색 도포를 입은 노자의 허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이 천명방이 길흉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은백 수염을 쓰다듬으며 삼청도장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진기 속에는 아주 희미한 배척의 기운이 떠다녔으니, 이는 청송관의 원청 도장일 것이다. 나머지 중소 문파 제자들은 대부분 거울을 차고 있었지만, 진기와 거울 장신구의 공명은 갑자기 강해졌다가 약해졌다 하여 명백히 유행을 따라 찬 것이지 진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정담결이 거의 반 자루 향 동안 지속적으로 운전되자, 양쪽 관자놀이에 서서히 가는 통증이 일어나 마치 가는 바늘이 톡톡 쑤시는 듯했고, 정신 소모는 예상보다 삼 성이나 더 컸다. 그는 들끓는 기운을 누르며, 처음 입경한 사람의 조심스러운 모습을 얼굴에 지어 내고, 자유롭게 주고받는 시가의 소란한 기운을 틈타, 천천히 홀 한가운데로 옮겨갔다. 발바닥이 수놓은 비단 융단의 부드러움을 밟는 느낌이 발목을 감싸고 있었고, 그곱에는 '경화수월'이라 제목이 적힌 거대한 서화가 걸려 있었다. 주인석에 가까웠고, 옆에는 상주 시기의 청동 고경 세 면이 걸려 있었다. 동록의 비린내와 서화의 묵내가 뒤섞여 피어오르는 이곳은 핵심 계층 인물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였다. 자리에 멈춰 서서 서화의 굳센 필획을 올려다보는 순간, 단전에 잠들어 있던 진기가 갑자기 저절로 꿈틀거리며 마치 무언가에 잡아당겨져 몸 표면으로 쏘아져 나가는 듯했고, 귓가의 비파 소리가 극히 빠르게 일순간 일그러졌다. 목덜미 털이 순간 곤두섰다. 가장 가까운 옆쪽 청동 거울을 힐끗 바라보니, 거울 표면에 가볍게 앉았던 먼지가 지금 아주 빠르게 물결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빠르기는 마치 착각 같아, 손끝에는 심지어 거울 표면에서 새어나온 밤바람에 속하지 않는 뼛속까지 시린 냉기와 극히 미세한 윙윙거리는 소리가 손가락 사이를 스치듯 지나갔다. "악 공자님, 계피꽃 술 좀 더 드릴까요? 오늘 새로 빚은 건데, 집에 있는 게분가루 과자와 잘 어울려요." 푸른색 두루마기에 짧은 웃옷을 입은 하인이 어느새 그의 옆에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웃으며 술병을 건네었다. 새로 빚은 계피꽃 달콤한 향기가 그의 몸에서 나는 비누 냄새와 섞여 불어와, 아까 잠시 지나간 거울 울림을 가렸다. 악정주는 즉시 진기의 흐름을 막아 모든 파동을 단전 깊숙이 눌러 넣었고, 관절을 꼭 쥐어 옥잔이 살짝 차가워지게 했으며, 손가락 끝에 잔 벽에 맺힌 가는 물방울이 묻었다. 그는 얼굴에 적절한 수줍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몸 옆의 글씨와 그림을 가볍게 가리키며, 말투는 시골 선비가 진품을 본 어색함이었다. "감사합니다, 술은 더 필요 없습니다. 감히 여쭤보건대, 이 글씨는 전조(前朝) 진용 선생의 친필인가요? 붓질이 강건하여 보기 드물군요." 하인이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며 막 대답하려 할 때, 악정주의 눈초리엔 이미 주석 옆의 사가(謝家) 비단옷 공자가 고개를 돌려 탐구하는 시선을 그에게로 곧장 던지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동시에 목덜미에 거미줄처럼 서늘하고 은밀한 시선이 여전히 그의 등을 따라붙어 있었으니, 분명히 다른 누군가의 엿보기였다. 기운에 남쪽 지방 특유의 배꽃 향기가 약간 섞여 있어, 그는 순간 그가 만경표국(萬鏡鏢局)의 축한리임을 알아차렸다. 본래 사흘 후에야 그와 만날 동맹자였다. 그는 태연하게 시선을 거두고, 하인이 이 글씨가 누주의 소장품인 전조 진적이라고 지껄이는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돌렸다. 아까의 공명이 너무나 수상했으니, 분명 정담결(靜潭訣)이 거울류 법기(法器)와 반응한 것이었다. 이미 사가의 주의를 끌었다. 다음으로는 기회를 만들어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이상한 상태를 희석시키기도 하고, 덩굴을 따라 올라가 사가의 내막을 탐색하기도 좋다. 마침 축한리도 현장에 있으니, 두 사람이 협력해 정보를 캐는 것이 그가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다. 그 비단옷 공자는 이미 걸어오고 있었다. 구두 바닥이 꽃무늬 나무 바닥을 밟는 소리가 솜을 밟는 것처럼 가볍았고, 바닥 틈새로 스며든 서늘한 기운이 진동 속에 악정주의 구두 부리를 스쳤다. 허리에 걸린 양지옥 거울이 흔들리며 벽에 걸린 유리등 그림자를 튀게 했고, 용연향과 갈아낸 거울석의 담담한 쓴내가 따뜻한 향에 섞여 불어왔다. 코끝에 아직 가시지 않은, 진용 친필의 송연먹이 백 년간 스며든 닥나무 종이의 고루한 냄새와 섞여 사람의 관자놀이를 은근히 조여왔다. "각하 안목이 좋으시군요, 이건 정말 진용의 친필입니다. 누주께서 당년에 적동(赤銅) 세 수레를 들여 바꿔 오신 거죠." 악정주는 몸을 돌려 공수(拱手)하며, 손가락 끝엔 여전히 옥잔 벽에 맺힌 가는 물방울이 묻어 있었다. 미온은 담담하고, 막 경성에 들어온 빈한한 선비가 가져야 할 수줍은 분수를 딱 맞게 잡았다. "소생 악지극(岳止戈)입니다, 우연히 진품을 보게 되어 실례했습니다." 옆에서 두세 사람이 다가왔는데, 그중 한 명은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그는 은빛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도포에 담담한 쓴내의 쑥 향이 묻어 있었으니, 바로 아까 악정주가 거울 장신구를 차지 않은 것을 감지한 청송관(青松觀)의 현미 도장(玄微道長)이었다. 누군가 웃으며 떠들어대며 손가락 끝으로 술잔 가장자리를 두드려 '땡' 하고 가볍게 울렸다. "악 형님이 진용의 글씨를 알아보셨으니, 차라리 이 '경화수월(鏡花水月)' 제목을 따라 시 두 구절을 잇는 게 어떻겠소?" 사씨(謝氏) 공자는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손목 사이의 옥 거울이 다시 가는 금빛을 흔들어 악정주의 눈꼬리를 살짝 따갑게 했다. "좋소, 바로 '거울'을 제목으로 삼아 각위의 아름다운 시를 듣겠소." 악정주는 눈을 들어 저 몇 개의 걸린 청동 고경(古鏡)을 훑어보았다. 동녹의 맑고 쓴내가 따뜻한 바람을 타고 불어와, 목구멍의 글귀는 투명하게 울려 당금(唐琴)의 여음을 살짝 눌렀다. "허당현고감, 지수자생람(虛堂懸古鑑, 止水自生瀾)."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공자(謝公子)가 먼저 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냈다. 손가락 마디가 옥경(玉鏡)을 찧어 가느다란 금속 울림을 냈다. "'지수자생람(止水自生瀾)'이란 구절이 참 훌륭하구려! 악공자는 심성이 맑고 투명하시군요. 호흡마저도 깊은 못처럼 고요하시니, 필시 양기(養氣)의 상승 심법(心法)을 수련하시는 모양이오?" 그는 말하며 고의적인지 아닌지 모를 태도로 악정주의 허리에 찬 오목검(烏木劍)을 스치듯 훑었고, 시선에는 탐구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악정주의 손가락 끝은 마침 몸 옆에 걸린 고경(古鏡)의 테두리를 스쳤다. 차갑고 거친 동녹이 손가락 지문 속으로 파고들었다. 경맥 속에 방금 가라앉혔던 정담결(靜潭訣)의 진기가 다시 요동쳤고, 수습할 때는 마치 썰물이 빠지듯 경맥을 살짝 당겨 쑤시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는 서둘러 호흡을 가다듬고, 손가락 끝을 본능적으로 옷자락에 비벼 동녹을 닦아내며 웃었다. "그저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조잡한 양생 호흡법일 뿐입니다. 책 몇 권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정도지요. 상승 심법이라 할 만한 건 못 됩니다. 오히려 천공방(天工坊)의 경기(鏡器)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데, 이 대청에 걸린 고경들은 문양이 섬세하고 동질(銅質)이 순수하니, 필시 귀방(貴坊)의 소장품이겠지요?" 사공자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말투에는 숨김 없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옆에 있는 경가(鏡架)를 두드리며 말했다. "악형(岳兄)이 보는 눈이 있으시구려! 이 고경들은 모두 우리 천공방이 한대(漢代)의 형식을 복원한 것입니다. 지금은 천명방(天命榜)의 연산 법칙에 맞춰, 사람의 전생 삼세(三世)에 쌓은 선공(善功)과 악업(惡業)을 비추어 보여주지요. 혼인을 정하고, 순위를 매기는데 공정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조(前朝)에 인정세고(人情世故)로 문파들의 순위를 매기던 종문방(宗門榜)보다 훨씬 믿음직하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있던 현미도장(玄微道長)이 가볍게 기침을 했다. 수염을 비비던 손가락이 살짝 힘을 주어 희어졌고, 쑥향의 쓴맛이 조금 더 짙어졌다. "거울은 형체는 비출 수 있어도 마음은 비출 수 없소. 만약 모든 일을 거울 면에 비친 결과에만 의지한다면, 사람은 오히려 기물의 노예가 되어 본심을 잃게 되오." 사공자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살짝 옅어졌다. 반박하려는 찰나, 흑색(玄色) 집사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구둣바닥이 마루를 밟아 가벼운 소리를 냈고, 손에는 금박을 그린 청함(請柬)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봉투는 밤이슬에 젖어 차갑게 스멀스멀했는데, 악정주를 향해 허리를 굽히며 웃었다. "악공자, 저는 사부(謝府)의 집사 사복(謝福)입니다. 저희 주인이 공자의 재명(才名)을 들으시고 특별히 저를 시켜 삼일 후 사부에 오셔서 새로 발굴된 선진(先秦) 고경을 감상하시길 청합니다." 악정주는 손을 내밀어 청함을 받았다. 금박으로 찍힌 '사(謝)'자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가락 끝을 살짝 저리게 했다. 거의 동시에, 그의 단전 기해(丹田氣海)에서 갑자기 아주 가늘게 가려운 느낌이 일었다. 마치 가는 솜털이 살짝 스친 것 같았고, 정담결의 진기가 제어되지 않은 채로 떨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측면으로 시선을 던졌다. 군중의 틈새로, 오황색(鵝黃色) 옷을 입은 여자가 손바닥만 한 청동 거울 한 장을 손가락 끝으로 돌리고 있었다. 거울 면에 방금 아주 희미한 물빛이 스쳤는데, 착각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바람에 마침 남쪽 지방 특유의 담담한 배꽃 향기가 흘러왔고, 그는 순간적으로 그 여자가 본래 삼일 후에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축한리(祝寒梨)임을 확신했다. 사공자가 옆에 서서 그가 청함을 소매에 넣는 것을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시선은 그가 동녹이 묻은 손가락 끝에 머물렀다. "악공자께서 방금 읊으신 시구 중 '지수(止水)'의 경치는, 우리 천공방에서 새로 만든 '정영경(靜影鏡)'의 공효와 잘 맞는군요. 공자께서는 어디 사사(師事)하셨소? 아마도 우리 천공방의 주경 심법(鑄鏡心法)과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비파와 피리 소리가 마침 한순간 멈추었다. 옆에 있던 몇 사람이 잔을 만지작거리던 동작이 멈췄다. 공기 속의 향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 무거워졌다. 악정주의 손가락 끝이 소매 속에서 청함의 뻣뻣한 모서리를 살짝 꼬집었다. 얼굴에 걸린 미소는 변함없었지만, 심장은 극도로 빠르게 반 박자 뛰었고, 귀 끝조차 아주 희미한 열기가 돌았다. 이 질문에 조금이라도 실수로 답하면, 위장이 들통날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그 오황색 옷 여자의 거울 이상 현상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리를 뜨기 전에 그녀의 신분을 반드시 파악해야 했다. 그는 웃으며 스승의 연원 문제를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산골에서 흩어진 수도자가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호흡법이라, 전문가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 했다. 손가락 끝으로 잔 가장자리의 남은 술을 스쳤는데, 달콤하고 끈적한 살구꽃 술 향이 가득한 방의 향내와 섞여 사람을 답답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새로 시작된 〈옥루춤〉의 비파 소리에 끌리는 사이,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다른 이들의 탐문 시선을 압도하자, 그는 술을 못 견뎌한다는 핑계를 대고 반 잔 남은 술을 쥔 채로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피해 복도 아래 반질반질 닳은 배나무 계단을 따라 뒷마당으로 향했다. 차갑고 딱딱한 나무 모서리가 청색 무명 신발 밑창을 뚫고 발바닥을 살짝 저리게 했는데, 방금까지 사공자에게 시험 당하며 불거진 당황함을 두어 가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잔에 남은 살구꽃 술은 아직 손바닥의 잔열을 머금고 있었고, 달콤한 향이 청량한 술기운과 뒤섞여 피어올랐다. 밤이슬을 머금은 바람이 뺨을 스치며 스쳐 지나가, 사람을 오싹하게 했다. 바람 속에는 아주 맑고 찬 향기가 한 가닥 섞여 있었는데, 앞쪽 홀의 향내처럼 속된 화려함이 아니라, 눈이 차가운 가지 위에 내려앉은 듯한 청아한 기운이었다. 그는 손가락 끝에 묻은 술을 살짝 문질러 보고 고개를 들어, 정자에 서 있는 오황색 옷의 여자를 보았다. 방금 인파 속에서 청동 거울을 돌리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녀는 등을 지고 주홍색 정자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고, 손가락 끝으로 손바닥만 한 그 청동 거울을 돌리고 있었다. 거울 면에는 온통 눈처럼 하얀 한월배가 비쳤고, 물빛이 반사되어 사람의 눈꼬리를 짓누르는 듯했다. 거울이 돌아갈 때 아주 가는 금속 울림이 따라왔는데, 기초 경지를 닦지 못한 자는 절대 감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발소리를 듣고도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 한월배는, 낮에 피는 것보다 더 깨끗해 보이네요." 그녀 목소리에는 남쪽 지역의 부드러운 억양이 약간 섞여 있었고, 끝음절은 아주 안정적으로 내려앉았는데, 표국 길을 익히고 생사를 자주 겪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었다. 말이 끝나는 순간, 사향 향이 섞인 차가운 금속의 날카로운 기운이 한 가닥 스쳐 지나갔고, 악정주 목덜미의 잔털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반 치쯤 곤두섰다. 악정주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다가가지 않고 정자 옆 배나무 아래 서서, 손가락 끝이 무의식적으로 잔 가장자리의 얼음 갈라진 무늬를 문질렀다. 거친 무늬가 손가락 끝을 살짝 간지럽게 했다. 달빛이 꽃잎을 담가 마치 얇은 은빛을 입힌 듯했고,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떨어졌다. 한 장이 그의 소매 끝에 묻었는데, 서늘했고 아주 희미한 꿀 향기가 났다. "네, 마치 달빛이 꽃잎에 응고된 것 같습니다." 그의 어조는 아주 느슨하게 풀어졌고, 앞쪽 홀에서의 접대용 인사말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우연히 만나 함께 경치를 감상하는 길손이라도 된 듯, 의도적으로 반나절 동안 감춰온 정담결 진기도 반 박자 느려져, 단전에 가라앉은 지수기가 드물게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작년에 표를 호송하며 서남 묘강 지역을 지날 때, 산골짜기에서 두 그루를 본 적이 있어요." 그녀가 손가락 끝으로 거울을 돌리는 동작이 반 박자 느려졌다. 청동 거울 가장자리에서 반사된 달빛이 흔들렸고, 그 아주 미세한 금속 울림도 약해졌다. 목소리에는 아주 희미한 부드러움이 스며들었다. "이 나무보다 더 성하게 피었어요. 보름달 뜨는 날에만 여섯 시진 동안 꽉 피었다가, 날이 밝으면 꽃잎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지더군요." 그는 그녀 몸에서 풍겨오는 풍진기(風塵氣)를 희미하게 맡을 수 있었다. 사향 향과 차가운 금속의 날카로운 냄새가 섞여 있었는데, 평생 표기(鏢器)를 만지고 청동 거울을 단련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기운이었다. 악정주가 "오" 하고 대답하며, 손가락 끝에 잔 가장자리에 떨어진 배꽃잎을 살짝 묻혔다. 부드럽고 얇은 꽃잎이 손가락 끝을 스치며, 간지러움이 팔을 타고 귀밑까지 올라왔다. "아가씨는 호위업을 하시는군요?" "성은 축입니다. 만경표국(萬鏡鏢局) 소속이에요." 그녀가 드디어 몸을 돌려 반쪽 얼굴을 드러냈다. 눈매는 청량하고, 턱선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는데, 방금 인파 속에 둘러싸였을 때의 소외감과 똑같았다. 다만 배꽃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잠시 부드러워졌고, 눈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반 가름 굽어졌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고, 앞쪽 홀의 시회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그가 방금 사가 관리에게 청첩장을 건네받은 바로 그 악공자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두 사람 모두 다시 말을 잇지 않았다. 단지 바람이 배잎을 스치는 살랑살랑 소리와, 앞쪽 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현악기 소리만이 남았는데, 오히려 앞쪽 홀의 가득한 향내와 아첨말보다 훨씬 편안했다. 악정주가 한 잔의 차를 들 만큼 서 있는 동안, 방금 사공자의 시험으로 팽팽해졌던 어깨와 목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반나절 동안 긴장했던 목덜미 근육이 이완되고, 호흡마저 두 가름 가벼워졌을 때, 그는 비로소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떠올렸다. "때가 늦었네요, 제가 먼저 앞쪽 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정담결을 운전하여 술 뒤에 떠오른 기혈을 누르려 했다. 그런데 마치 가라앉은 못처럼 안정되어야 할 진기가 갑자기 아주 미세한 당기는 느낌을 전달해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은실이 하나 있어, 단전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지수기 진기를 살짝 잡아당기는 듯했다. 경맥마저 잠시 저려서, 마치 방금 사가 청첩장의 금박 가장자리를 건드렸을 때의 감촉이 피부를 타고 기해(氣海)까지 파고든 것 같았다. 그는 얼굴에 조금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다만 눈가의 여백으로 축한리의 시선이 그가 청첩장을 넣은 왼쪽 소매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는데, 반 호흡 멈추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배꽃 가지로 돌아갔다. 그가 열 몇 걸음 나가서 다시 돌아보았을 때, 정자는 이미 비어 있었다. 돌탁자 위에는 바람에 휘말려 떨어진 배꽃잎 반 장이 남아 있었는데, 달빛에 비쳐 투명하게 빛났고, 옆에는 아주 희미한 흡인감이 잔류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방금 앞쪽 홀에서 그 고대 거울 파편을 만졌을 때의 감촉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손가락 끝이 무의식적으로 왼쪽 소매에 눌렸다. 금박 청첩장의 모서리가 손가락 끝을 아프게 눌렀고, 단전의 그 이상한 잔물결은 아직도 살짝 출렁이고 있었다. 축한리가 방금 전 희미하게 던졌던 그 한 줄기 시선, 그리고 그녀 손에 들린 청동 거울의 물빛이, 갑자기 심력천이 떠나기 전에 몰래 건네준 밀령 위에 적힌 "만경표국 동향을 유의하라"는 붉은 필적과 겹쳐졌다. 그는 원래 이번 입경이 각 파파의 천명방에 대한 의존 정도를 파악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난월루에 발을 들인 첫 순간부터, 이미 오래전에 짜여진 그물에 걸려들었음을. 그리고 그 성씨가 '축'인 표국 여인은 바로 그 그물 속에서 그가 계산하지 못했던, 첫 번째, 하나만 움직여도 전체가 흔들리는 실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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