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파 꽈리마다 미세한 유리 파편이 박힌 듯한 통증에 도윤은 눈을 떴다. 매캐한 연기와 잘게 부서진 콘크리트 분진이 공기 중에 부유하며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입안에서는 비릿한 철분 냄새가 진동했고, 혀끝은 감각이 죽어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전신이 천 근 무게의 닻에 눌린 것처럼 바닥에 들러붙어 있었다. 고대의 힘을 억지로 끌어다 쓴 대가는 육신을 짓이기는 고문으로 돌아왔다. 양손은 불길에 휩싸였던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으면서도, 손톱 밑으로는 시퍼런 냉기가 파고들어 뼈마디를 얼리고 있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동시에 신경을 갉아먹는 감각에 도윤은 턱이 아플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주변은 고요했다. 아니, 고요하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귀가 먹먹해진 탓에 세상의 모든 소음이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웅웅거렸다. 도윤은 고개를 간신히 돌려 무너진 천장 틈새로 쏟아지는 희미한 빛을 보았다. 그 빛줄기 사이로 푸른색 마력 입자들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봉인은 실패했다. 도윤이 쏟아부은 데이터와 의지는 저 거대한 흐름을 잠시 멈춰 세웠을 뿐, 근원적인 균열은 여전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김도윤 씨! 정신이 들어요? 제 말 들려요?"
멀리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고막을 찔렀다. 시야에 이서하의 얼굴이 들이닥쳤다. 그녀의 뺨에는 날카로운 파편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속눈썹 끝에 맺혀 있었다. 평소의 당당하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서하의 눈동자는 폭풍 전야의 바다처럼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도윤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그 진동이 화상 부위에 닿을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목구멍에서는 쇳소리만 맴돌았다.
"아직... 안 끝났어요. 저기, 마력이..."
간신히 뱉어낸 말은 젖은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 같았다. 도윤은 떨리는 손을 들어 허공의 푸른 균열을 가리켰다. 이서하는 도윤의 손을 꽉 맞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얼어붙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녹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온기조차 지금의 도윤에게는 과분한 통증이었다.
"그게 지금 중요해요? 당신 몸이 이 꼴인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요, 그냥 좀 가만히 있어요.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이서하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녀는 도윤을 부축해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다리는 젖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바닥을 짚은 손끝에서 다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고대의 힘이 지나간 자리는 황폐해진 섬과 같았다. 생명력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타버린 잿더미와 흉터뿐이었다.
저 멀리서 최가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단말기를 두드리며 다른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1구역 봉인 복구율 60%입니다. 하지만 김도윤 씨가 열어젖힌 통로에서 역류하는 에너지가 계산 범위를 넘어섰어요."
최가을은 도윤의 상태를 확인하는 대신, 홀로그램 화면에 뜬 수치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습기가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주변 민간인 거주 구역까지 냉기가 퍼질 겁니다. 김도윤 씨를 다시 연결해야 합니다. 그가 가진 데이터 값이 있어야 이 균열을 완전히 닫을 수 있어요."
그 말에 이서하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전신에서 서늘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미쳤어요? 지금 이 사람 상태 안 보여요? 여기서 더 힘을 쓰면 정말 죽는다고요! 사람이 도구예요?"
"이서하 요원, 감정적으로 굴지 마세요. 도시 전체가 얼어붙는 것과 한 명의 희생 중 무엇이 더 무거운지 모릅니까? 이건 시스템의 생존 문제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부딪혔다. 도윤은 벽에 기댄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숫자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었다. 여기서 멈추면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저 푸른 심연 속으로 손을 뻗는 순간, 자신의 자아라는 실타래는 완전히 풀려 사라질지도 모른다.
도윤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렁이는 마력의 실가닥을 붙잡으려 했다. 손끝이 균열에 닿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이 뇌를 강타했다.
"으윽!"
비명이 터졌다. 손가락 끝의 피부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내부의 열기에 의해 터져 나갔다. 마력의 역류는 자비가 없었다. 도윤은 바닥을 뒹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서하가 비명을 지르며 그를 끌어안았다.
"하지 마! 제발 좀 하지 말라고요!"
그녀의 눈물이 도윤의 뺨에 떨어졌다. 그 눈물은 뜨거웠다. 고대의 힘이 주는 차가운 공포 속에서 유일하게 실존하는 온기였다. 최가을은 입술을 깨물며 통신기를 쥐어짰다. 그녀의 눈동자 역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직의 논리와 눈앞의 참혹한 현실 사이에서 그녀의 이성은 가느다란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최가을 씨... 저쪽, 흐름을 끊어야 해요. 내가 아니라... 시민들부터... 보호해요. 내 힘, 다시 쓰게 하지 마요. 그건... 해결책이 아니니까."
도윤은 최가을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돌려 요원들에게 소리쳤다.
"전 요원, 물리적 차단막 형성! 김도윤 씨의 재접속은 보류한다. 일단 생존자 구출과 에너지 분산에 집중해!"
이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윤을 더 깊이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도윤의 등에 닿아 고동쳤다.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구조대의 불빛이 보였다. 멀리서 구조 헬기의 둔탁한 회전날개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의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지만, 그 너머로 아주 희미한 태양 빛이 구름을 뚫고 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도윤이 옮겨진 곳은 인근 지하 주차장을 개조한 임시 피신처였다. 축축한 시멘트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인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사람들의 낮은 신음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윤은 구석진 곳에 놓인 간이 침상에 눕혀졌다. 몸에 닿는 담요의 감촉이 거칠었지만, 그 무게감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여기 있어요. 어디 가지 말고."
이서하는 도윤의 곁에 접이식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그녀는 근처에서 가져온 뜨거운 보리차를 컵에 담아 내밀었다. 도윤이 컵을 쥐려 했지만, 붕대로 감긴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컵을 도윤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구수한 보리차 향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얼어붙었던 장기들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서 정유진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엉망이 된 도윤의 꼴을 보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선배... 진짜 바보예요? 왜 항상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냐고요."
정유진은 울먹이며 침대 발치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가방에서 컵라면 두 개를 꺼내 놓았다.
"이거, 아까 구호 물품으로 받은 건데... 선배 먹으라고 챙겨왔어요. 솔직히 말하면, 선배 지금 얼굴 진짜 못 봐주겠거든요.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녀의 서툰 위로에 아주 조금 웃음이 났다. 이서하가 옆에서 핀잔을 주듯 거들었다.
"그러게요. 김도윤 씨 얼굴은 원래도 좀 딱딱했는데, 지금은 더 망가질 데도 없네요. 흉터 생기면 어떡할 거예요? 내가 책임져야 하나?"
"뭘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요. 제가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닙니다."
도윤의 대답에 이서하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이마에 얹힌 젖은 수건을 갈아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은 항상 그래요. 숫자가 어떻고 데이터가 어떻고 하면서, 결국엔 제일 무모하게 뛰어들잖아요. 그게 당신의 결함이에요. 앞뒤 안 재고 사람부터 구하려는 거."
그녀의 손길이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짧은 촉감이 마치 안식처에 도착한 여행자가 느끼는 평온함처럼 달콤했다. 도윤은 눈을 감고 그 온기를 음미했다. 주변에서는 금속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 사람들이 조용히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벗어나 잠시 머무는 이 작은 섬 같은 공간이, 지금 도윤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이서하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도망칠 수 있었는데 끝까지 남았고. 우린 둘 다 제정신이 아니네요."
"맞아요. 우린 둘 다 엉망진창이죠. 그래도... 이런 당신이라서 내 편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영웅이었으면 아마 재수 없어서 같이 안 있었을걸요?"
이서하의 농담 섞인 진심이 가슴 한구석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도윤이 완벽하지 않기에, 상처 입고 흔들리는 인간이기에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결점까지 수용받는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후, 김태균이 지친 기색으로 다가왔다. 그는 도윤의 상태를 살피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도윤아, 고생 많았다. 네가 아니었으면 시청 앞은 지금쯤 거대한 빙하가 됐을 거다."
그는 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옆에 앉았다. 그의 손에서도 화약 냄새와 마력의 잔향이 났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이렇게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저 위쪽 양반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고. 정민석 팀장 그 친구도 그렇고, 원류파 지휘부도 그렇고. 제일 안전한 곳에서 상황만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지."
김태균의 말에 도윤은 감았던 눈을 떴다. 머릿속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며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이 전쟁으로 진짜 이득을 보는 건 우리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글쎄다. 예전 기록을 보면 '첫 번째 수호자들'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다는 구절이 있어. 도시를 지키는 자들이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질 때, 시스템을 설계한 자들은 그 혼란을 틈타 더 큰 권력을 쥐었다는 소문 말이야."
김태균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서울 지하의 에너지 흐름도가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너처럼 의심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예전에도 있었어. 그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이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
도윤은 수첩의 도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누군가의 정교한 설계도 위에서 춤추는 인형극에 불과했다면? 소름 끼치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지금은 그 의문을 파헤칠 기력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다음엔... 우리 버리고 먼저 뛰어들지 마요. 약속해요."
이서하가 도윤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겹치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진지하게 그를 꿰뚫고 있었다.
"그럼 이서하 씨도... 도망가지 말고 옆에 있어요. 내가 길을 잃지 않게."
도윤은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그 온기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참아왔던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잠깐만 잘게요. 아주 잠깐만..."
"그래요. 자요.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이서하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담요 속의 온기가 도윤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이마에 닿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보리차의 잔향이 코끝을 맴돌았고, 지하 주차장의 소음은 평화로운 자장가처럼 변해갔다. 도윤은 더 이상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곁에 이 사람들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깊은 잠의 수렁으로 빠져들기 직전, 도윤은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이번에는 자신만의 전쟁으로 두지 않겠다고. 이 결함투성이 동료들과 함께, 이 도시의 감춰진 진실을 끝까지 마주하겠다고.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보고 드립니다. 대상은 현재 의식을 잃었습니다. 에너지 반응은 안정적이지만... 아니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최가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피신처 입구 쪽에서 조용히 통신기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잠든 도윤을 향해 있었을까, 아니면 그가 모르는 머나먼 곳을 향해 있었을까. 그녀는 누군가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리려다, 인기척을 느낀 듯 급히 말을 멈췄다.
그녀의 그림자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괴물의 손톱처럼 보였다가, 다시 평범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정말로 아군인지, 아니면 또 다른 거대한 판을 짜는 설계자의 말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도윤은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침잠했다.
서울의 마지막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들이 지켜낸 평화는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웠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꽃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희망인지, 아니면 더 큰 파멸을 부르는 신호탄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