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가 폐부에 닿을 때마다 얼음 조각을 들이마신 듯 가슴이 아릿했다. 서울 시청 지하 4층, 도시수호파의 비밀 연무장은 거대한 기계 장치의 뱃속처럼 습한 열기와 금속성 마찰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김도윤은 텅 빈 공간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하얀 입김이 금세 흩어졌다. 손등 위에서는 푸른 마법진이 신경질적으로 깜빡이며 열기를 뿜었지만, 정작 피가 통하지 않는 손가락 끝은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차가웠다.
어제 최가을이 보여준 기초 방어식의 궤적을 복기하며 그는 다시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마력은 유연한 흐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혈관 속에 잘게 부순 유리 가루를 강제로 밀어 넣는 것 같은 고통을 동반했다. 마디마디가 뒤틀리는 감각에 김도윤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삐걱거리는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입력값 4.2, 출력값... 측정 불가."
그는 떨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데이터 분석가로 살아온 세월 동안 그는 세상을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의 집합체라 믿어왔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수식은 배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고대의 힘은 논리를 비웃었다. 생명력을 땔감 삼아 타오르는 이 불합리한 에너지는 열역학 법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제멋대로 날뛰었다. 그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캉, 캉.
정적을 깨고 두꺼운 금속 바닥을 울리는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이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느껴지는 발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이서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검은색 전술 가방을 한쪽 어깨에 대충 걸친 채, 아직 잠기가 가시지 않은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뭐야, 도윤 씨. 벌써 나와 있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경쾌하게 울렸다.
"공무원이라 그런가, 출근 시간 하나는 칼 같네."
이서하는 훈련장 구석에 가방을 툭 던져놓았다. 둔탁한 소리가 벽면을 타고 메아리쳤다. 김도윤은 황급히 등 뒤로 손을 감췄다. 경련이 가시지 않은 손가락이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잠이 안 와서요. 복습도 좀 할 겸."
"복습이라기엔 얼굴색이 너무 안 좋은데?"
이서하가 눈을 가늘게 뜨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김도윤의 창백하게 질린 안색과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를 집요하게 훑었다.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금속취와 희미한 화약 향이 김도윤의 굳어있던 감각을 일깨웠다. 이서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의 팔을 낚아채듯 잡아당겼다. 가죽 장갑의 거친 질감이 그의 손목에 닿았다. "이거, 단순한 근육통이 아니네요."
이서하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그녀는 도윤의 손목을 쥔 채, 그의 손등 위에서 사그라드는 푸른 마법진의 잔상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가죽 장갑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악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팔을 빼내려 했으나, 그녀의 손가락은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식 클램프처럼 그의 손목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아직 마력 회로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력을 높이면 혈관이 타버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도윤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 힘은 훨씬 더 물리적이고 파괴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녀의 경고는 차가운 금속판처럼 딱딱하게 가슴에 박혔다. 도윤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데이터 분석가로서 그는 모든 현상을 수치화하고 제어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몸 안에서 요동치는 이 에너지는, 마치 통제 불능의 증기기관이 폭주하며 보일러를 찢고 나오려는 것과 같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제가 이 조직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결국 저는 다시 시청의 책상물림으로 돌아가거나 그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되겠죠."
도윤의 목조인 듯 건조한 대답에 이서하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연민보다는 동질감에 가까운 기류가 서려 있었다. 그녀 역시 이 거대한 도시의 톱니바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땔감으로 던져본 기억이 있는 듯했다.
"증명이라... 이 바닥에서 증명이라는 건 대개 피 냄새를 동반하죠."
그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연무장의 육중한 강철 문이 열렸다. 육중한 금속 마찰음이 천장을 때리며 메아리쳤다. 구두 굽이 바닥을 치는 단호한 소리와 함께 최가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제복은 단 한 군데의 구김도 없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갓 출고된 정밀 병기처럼 보였다.
"잡담은 거기까지 하도록 하죠. 이서하 요원, 김도윤 씨. 훈련 시간이 5분 지났습니다."
최가을의 목소리는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무기질의 그것이었다. 그녀는 손에 든 태블릿 PC를 가볍게 두드리며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뒤를 따라 도시수호파의 다른 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추었다.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의 벽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었고, 도윤은 그 견고한 질서 속에서 유독 겉도는 부품처럼 느껴졌다.
"오늘 훈련은 실전 모의전입니다. 김도윤 씨는 3번 포지션에서 방어 지원을 맡으세요. 절대로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고, 정해진 출력값 3.0을 유지하십시오. 당신의 독단적인 판단은 팀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최가을의 지시는 짧고 명확했다. 그녀는 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덧붙였다.
"우리는 군대입니다, 도윤 씨. 당신의 데이터 시트가 아무리 훌륭해도, 현장에서의 불협화음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도윤은 대답 대신 가볍게 목례를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불쾌한 열기가 치솟았지만, 그는 그것을 억눌렀다. 연무장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바닥에서 거대한 기계 장치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고대의 마력석을 심장으로 삼은 연습용 골렘이었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괴한 소음이 정적을 찢었다.
"시뮬레이션 시작."
최가을의 선언과 함께 골렘이 육중한 팔을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고막을 자극했다. 이서하를 필두로 한 요원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골렘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도윤은 후방에서 지시받은 대로 방어식을 전개했다.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이 반투명한 장벽을 형성했다.
하지만 도윤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골렘의 관절이 꺾이는 각도, 마력석이 빛을 발하는 주기, 그리고 바닥의 진동 소음.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본능이 그의 뇌리에 수천 개의 수식을 투사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 골렘의 출력은 왼쪽 무릎 관절의 유격 때문에 0.8초의 지연 시간이 발생하고 있어. 정해진 포메이션대로라면 우리는 다음 공격에서 불필요한 마력을 15% 더 소모하게 될 거야.'
도윤의 미간이 좁아졌다. 규율은 포메이션을 유지하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 데이터는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골렘이 다시 한번 거대한 주먹을 내리치려던 찰나,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대열을 박차고 나갔다.
"도윤 씨! 뭐 하는 거예요?"
이서하의 당혹스러운 외침이 들렸지만, 도윤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방어막을 전개하는 대신, 마력을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내 골렘의 왼쪽 무릎 관절 사이로 밀어 넣었다. 혈관 속으로 유리 가루가 흐르는 듯한 고통이 다시 한번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입안에서 비릿한 쇳맛이 느껴졌고, 코끝에서는 매캐한 오존 냄새가 진동했다.
캉!
날카로운 금속성 굉음과 함께 골렘의 거구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예상치 못한 궤적의 공격에 기계 장치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불꽃을 튀겼다. 연무장 내부에 인공적인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도윤은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야가 미친 듯이 흔들렸고, 손끝에서는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와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 무리한 마력 운용의 대가는 혹독했다. 머릿속은 수만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상황 종료."
최가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기가 걷히자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도윤을 향해 꽂혔다. 이서하가 황급히 다가와 도윤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최가을의 서늘한 기운은 그녀의 접근조차 차단하는 듯했다.
"김도윤 씨, 제 지시가 우스웠습니까?"
"아니오... 효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골렘의 약점을... 포착했으니까요."
도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가을은 쓰러진 골렘과 도윤의 피 묻은 손을 번갈아 보더니, 태블릿을 신경질적으로 껐다.
"결과는 좋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팀의 신뢰를 배신하고 절차를 어겼습니다. 기계에서 톱니바퀴 하나가 제멋대로 회전 속도를 바꾸면, 결국 전체 장치가 파손되는 법이죠. 이번 일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치료부터 받으세요."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무장을 나갔다. 이서하는 도윤을 부축하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윤 씨, 당신 진짜 미쳤어요? 방금 그건... 정말 대단하긴 했지만, 여기선 그런 천재성을 반기지 않아요. 특히 가을 팀장님 같은 사람한테는 더더욱."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수식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도윤은 이서하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거렸다. 그의 가슴 속에는 이 조직의 냉혹한 논리와 자신의 가치관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커져만 갔다.
오후에는 외곽 구역의 결계 보수 임무가 주어졌다. 도윤은 아직 가시지 않은 두통을 억누르며 이서하, 그리고 몇 명의 요원과 함께 낡은 장갑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서울의 경계선에 위치한 낙후된 주거 지역이었다.
장갑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황량했다. 거대한 결계 기둥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축축한 먼지 냄새와 정전기 특유의 비릿한 향이 감돌았다. 주민들은 먼발치에서 도시수호파의 문장이 새겨진 차량을 보며 창문을 닫거나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외심보다는 깊은 불신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동맹 구역이라면서요. 왜 저 사람들은 우리를 저렇게 보죠?"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옆에 앉아 있던 요원이 코웃음을 쳤다.
"동맹은 무슨. 그냥 보호비를 내는 피지배층이지. 우리가 결계를 유지해주는 대가로 그들은 자원을 내놓으니까. 저 결계 기둥 하나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만 줄 알아? 저 사람들 평생 벌어도 못 갚아."
도윤은 결계 기둥 앞에 서서 장비를 점검했다.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기둥의 에너지 흐름을 분석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결계의 출력이 필요 이상으로 높게 설정되어 있었고, 그 잉여 에너지는 지하의 특정 경로를 통해 어디론가 전송되고 있었다.
"이서하 씨, 이 결계... 이상합니다. 방어에 필요한 수치보다 30%나 과부하 상태예요. 에너지가 새고 있습니다."
도윤의 말에 근처에서 작업하던 현지 담당자가 황급히 다가왔다. 그는 낡은 작업복 소매로 땀을 닦으며 도윤의 시선을 피했다.
"아, 그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설정한 겁니다. 저희는 세부 사항은 몰라요. 그냥 수치만 맞추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시켰습니까? 이건 명백한 자원 낭비입니다. 이 에너지만 아껴도 이 구역의 난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데요."
도윤이 따져 묻자, 무전기 너머로 최가을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도윤 씨, 보고된 임무 범위를 벗어나지 마세요. 결계의 출력 설정은 상부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당신의 직무는 보수이지, 정책 비판이 아닙니다. 즉시 작업을 완료하고 복귀하세요.]
도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결계 너머, 낡은 아파트 단지의 닫힌 창문 사이로 커튼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는 이 전쟁과 결계 유지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 도시는 거대한 착취의 시스템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이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본부의 휴게실은 적막했다. 도윤은 스테인리스 테이블 앞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머그컵을 감싸 쥐었다. 마력을 과다 사용한 후유증으로 오한이 찾아왔다. 형광등의 희미한 반사가 테이블 위에서 차갑게 일렁였다.
"이거 마셔요. 몸 좀 녹일 수 있을 거야."
어느새 다가온 이서하가 따뜻한 곡물차 한 잔을 내밀었다.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도윤의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오늘 고생 많았어요. 가을 팀장님한테 찍힌 건... 뭐, 내가 잘 말해볼게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서하 씨, 당신은 이 시스템이 정말 옳다고 생각합니까?"
도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서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컵 속의 액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옳고 그름 같은 건 배부른 사람들이나 따지는 거죠. 우린 그냥 살아남는 쪽을 택한 것뿐이에요. 도윤 씨, 당신은 가끔 보면 여기 사람 같지가 않아. 너무... 투명하달까. 이 더러운 물속에서 혼자만 깨끗한 척하면 금방 먹잇감이 돼요."
"깨끗한 척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냥... 제 눈에 보이는 오류를 무시할 수 없을 뿐입니다. 제 아버지는 숫자를 믿지 않아서 돌아가셨고, 저는 숫자를 너무 믿어서 여기까지 왔죠. 그런데 지금 제가 보는 숫자들이 다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도윤의 고백에 이서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난방기기의 웅웅거리는 소음만이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메웠다. 멀찍이서 다른 요원들이 그들을 흘깃거리며 지나갔다. 그중에는 오늘 훈련에서 도윤의 돌발 행동에 불만을 품은 이들도 섞여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도윤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 모니터의 푸른 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며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골렘의 반응 속도 저하, 결계의 비정상적인 에너지 유출, 그리고 현지 주민들의 적대감. 최가을의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지만, 도윤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진실을 삭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수치는 배신하지 않으며, 데이터는 기록되어야만 가치를 지닌다.
[보고서 업로드 중...]
엔터 키를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잠시 후, 화면 중앙에 붉은색 경고창이 점멸했다.
[알림: 해당 보고서는 '상급 검토 대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보안 등급에 따라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도윤의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쳤다. 단순히 절차를 어긴 신입의 보고서에 붙을 만한 태그가 아니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열린 문틈 사이로 누군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훈련 내내 도윤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라이벌 요원이었다. 그는 문가에 멈춰 서서 도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가에는 비릿하고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 참 인상적이더라. 김도윤 씨."
그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앞으로 벌어질 파국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발걸음이었다.
도윤은 모니터 화면의 붉은 경고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이 던진 진실의 조각이 이 거대한 조직의 수면 아래에서 어떤 괴물을 깨웠는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스템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들이 그를 향해 빠르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그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다시 한번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도윤은 책상 밑에서 가늘게 떨리는 자신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