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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끌거리는 아스팔트 가루가 입술 사이에서 서걱거렸다. 김도윤은 폐부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에 발작하듯 기침을 터뜨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깨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손바닥 살점을 파고들었지만, 그 통증조차 고막을 마비시킨 이명 앞에서는 희미했다. 비명 섞인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손가락 사이로 점성이 강한 액체가 울컥 쏟아졌다. 그것이 자신의 혈관에서 터져 나온 피인지, 아니면 붕괴한 결계가 뱉어낸 기괴한 에너지의 찌꺼기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정신이 좀 듭니까? 제 말이 들려요?"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내가 어깨를 흔들었지만, 김도윤은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코끝을 맴도는 금속 탄 냄새와 비릿한 혈향이 위장을 뒤틀어놓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더듬었다. 거대한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어긋나 비명을 지르는 듯한 환청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무의식적으로 뻗어 나갔던 그 기이한 힘의 감각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기분 나쁜 박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발밑의 땅이 출렁이는 착각 속에 그는 다시 한번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니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설명을 좀..."
김도윤은 간신히 입술을 떼어 쉰 목소리를 뱉었다. 곁에 서 있던 구조 대원이 부축하려 손을 뻗었으나, 그는 거칠게 그 손길을 쳐내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귓가에는 여전히 결계 파편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맴돌았다. 통계 수치로만 보아오던 재난이 실체화되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어떤 데이터보다도 잔혹했다. 자신이 이 거대한 파괴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응급 텐트 안은 형광등의 희뿌연 빛과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다. 김도윤은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 모서리가 허벅지를 압박하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맞은편에는 최가을이 서 있었다. 그녀의 단정한 제복에는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아, 이 아수라장 속에서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이질적인 위압감을 풍겼다. 그녀는 손에 든 서류를 탁탁 소리가 나게 정리하며 김도윤을 꿰뚫어 볼 듯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김도윤 씨, 당신이 현장에서 보여준 반응은 일반적인 시민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더군요."
최가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정리하자면, 당신은 결계가 붕괴하는 순간 그 흐름을 읽고 대응하려 했습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김도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떨리는 손을 감추려 무릎 위에 놓인 바짓가랑이를 꽉 움켜쥐었다.
"저는 그저 데이터 분석가일 뿐입니다. 수치가 급변하는 걸 보고 몸이 먼저 반응했을 뿐이라고요."
"본능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한 움직임이었죠. 우리 조직은 당신 같은 자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위험 요소를 격리할 권한도 가지고 있습니다."
최가을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옷깃에서 풍기는 서늘한 향기가 텐트 안의 약품 냄새와 섞여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지금 밖에는 당신을 원인 제공자로 지목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당신은 다른 쪽의 먹잇감이 될 겁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모래시계의 모래가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녀의 제안은 보호라는 이름의 감금처럼 들렸다. 김도윤은 주먹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힘을 주었다. 시스템의 정확성을 신뢰해왔던 그였지만, 지금 눈앞의 시스템은 자신을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하며 효율적인 처분 방식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최가을이 나간 뒤, 텐트 안으로 이서하가 들어왔다. 한 손에 구급상자를 든 그녀의 얼굴에는 거뭇한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이서하는 김도윤의 상태를 살피더니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미지근하게 데워진 생리식염수를 솜에 적셔 김도윤의 이마에 맺힌 핏자국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 살살 좀 하세요. 따가워 죽겠네."
김도윤이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움츠렸다. 이서하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소독약을 덧발랐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요, 그냥 좀 가만히 있어요. 상처가 생각보다 깊으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상처 주변을 눌렀을 때 욱신거리는 통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손길은 의외로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김도윤의 어깨에 두툼한 담요를 덮어주었다. 간이 난로에서 올라오는 건조한 열기가 담요의 포근함과 섞여 김도윤의 떨리는 몸을 조금씩 진정시켰다.
"너 같은 애가 왜 이런 데 휘말려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네. 그냥 시청 사무실에서 숫자나 만지고 있지."
이서하가 붕대를 감으며 툭 내뱉었다. 김도윤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는데, 사람은 참 어렵네요."
"거짓말 안 하는 숫자가 사람을 구해주진 않더라고요. 결국 발로 뛰는 건 사람이지."
이서하는 붕대 끝을 고정하며 김도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의심과 걱정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최 팀장님이 뭐라고 했든 너무 겁먹지 마요. 적어도 여기 있는 동안은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 짧은 한마디에 김도윤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방어 기제가 아주 잠시 허물어졌다. 소독약의 싸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으나,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생존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서하는 따뜻한 물이 담긴 종이컵을 그의 손에 쥐여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을 취하던 김도윤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대피소 뒤편의 어두운 복도로 향했다. 머리 위 형광등이 불안하게 깜빡이며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건물 틈새로 스며들어 목덜미를 스칠 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청의 개가 되기로 한 건가, 아니면 아직 간을 보는 중인가?"
박시온이었다. 그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옷깃에서는 담배 연기와 한약 냄새가 섞인 묘한 향이 풍겼다. 박시온은 천천히 걸어 나와 김도윤의 앞에 섰다.
"박시온 씨,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김도윤이 경계하며 물었다. 박시온은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이 도시의 밑바닥은 생각보다 연결된 곳이 많거든. 선택해야죠, 김도윤 씨. 저들이 당신에게 약속한 보호가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그는 김도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우린 당신이 그날 어떤 힘을 썼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건 통계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도시수호파는 당신이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한다면 이 도시의 진짜 흐름을 볼 수 있게 해주죠."
박시온의 말은 불편할 정도로 진실을 찌르고 있었다. 김도윤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새로운 질서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것 아닙니까?"
"희생 없는 재구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당신을 속이지는 않죠."
박시온은 어둠 속으로 다시 몸을 숨기며 덧붙였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전쟁에서 진짜로 이득을 보는 쪽이 누구인지. 답을 내리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대피소를 나온 김도윤은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폐 안쪽까지 얼어붙는 듯한 감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멀리서 여전히 깜빡이는 비상경고등의 붉은 빛이 눈 덮인 거리 위로 선혈처럼 흩뿌려지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감시 드론의 윙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도시 전체를 덮은 얇은 눈발은 축축한 냉기를 머금은 채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최가을이 기다리고 있는 지휘 본부로 향하며 김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지금 당장 살아남기 위해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 어린 가담이 아닌, 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적인 협력에 불과했다.
"결정했습니까?"
최가을이 그를 맞이하며 물었다. 김도윤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분간은 여기 남겠습니다. 제가 가진 데이터가 도움이 될 테니까요."
최가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김도윤은 그녀의 시선 너머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수많은 눈길을 느꼈다. 그는 대피소 밖 어둠 속 어딘가에서 박시온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을 쫓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양쪽의 감시 아래 갇혀버린 듯한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김도윤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전쟁에서 진짜로 이득을 보는 쪽은 도대체 누구인가. 누군가는 권력을 얻고, 누군가는 질서를 재편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은 누구의 장부에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가짜 선택의 벽 뒤에서 더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밤하늘을 가르는 붉은 경고등이 그의 눈동자에 맺혔다. 강물이 바위를 뚫듯, 이 거대한 운명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 김도윤은 차가운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굳게 닫힌 시청의 육중한 문을 바라보았다. 폭풍 전의 고요함이 도시를 덮고 있었으나, 그것은 곧 닥쳐올 더 큰 파멸을 예고하는 전조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서 이서하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도윤은 대답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발밑에 거대한 심연이 열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음을 직감했다.
도시의 기계적인 소음이 밤의 정막을 뚫고 울려 퍼졌다. 결계의 파편들이 바닥에 굴러다니며 내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마지막 숨소리처럼 처량했다. 김도윤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그 소리에 맞춰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발걸음이자, 동시에 자신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길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먼 곳에서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눈발은 더욱 거세져 시야를 가렸고, 김도윤의 그림자는 붉은 경고등 아래에서 길게 일렁이다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도시의 마지막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김도윤은 텐트 안으로 돌아가며 이서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그 어떤 대화보다 무거웠다. 김도윤은 그녀의 곁을 지나쳐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러니까,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겠죠."
혼잣말처럼 내뱉은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는 자신이 내린 선택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숫자의 뒤에 숨어 세상을 관망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밤은 깊어갔고, 서울의 지하에서는 고대의 한기가 다시 한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결계의 틈새로 스며든 어둠이 도시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새로운 비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잠들지 못하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다가올 내일을 기다렸다. 그것은 희망이 아닌, 오직 생존만을 위한 처절한 기다림이었다.
대피소 밖에서는 여전히 드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감시가 멈추지 않는 한, 그의 가짜 선택은 계속될 것이었다. 김도윤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폐부를 파고드는 냉기가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전쟁에서, 진짜로 이득 보는 쪽은 도대체 누구지?"
그의 마지막 의문은 대답 없는 도시의 소음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멀리서, 두 번째 진영의 연락책이 남긴 잔향이 스산한 바람을 타고 그의 귓가를 스쳤다. 선택은 끝났으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