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벽면을 타고 흐르는 냉기가 어깨 끝에 닿았다. 코끝을 찌르는 락스 냄새와 눅눅한 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나현은 목발 끝이 바닥 타일에 부딪힐 때마다 발생하는 건조한 마찰음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왼쪽 옆구리에서는 벼려진 칼날이 살점을 헤집는 듯한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난 전투가 남긴 흉터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에서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굴러다니는 기분이었다.
회의실 입구에 서 있던 두 명의 조정 인력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명은 당황한 듯 허리춤의 무전기를 만지작거렸고, 다른 한 명은 성급히 앞을 막아서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시선은 이나현의 얼굴과 피 섞인 진물이 배어 나온 옆구리 붕대를 번갈아 훑었다.
"이나현 씨, 여기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아직 거동도 불편하신 몸으로..."
남자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존경과 노골적인 경계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이나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목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뼈의 윤곽이 도드라졌다.
"알아요. 발언권 같은 건 요구 안 할게요. 그냥,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는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나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거칠게 일렁이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앞으로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어딘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방해 안 할 테니, 맨 뒷줄에서 듣게만 해 줘요."
두 남자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복도 끝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깜빡였다. 마치 수명이 다한 기계가 내뱉는 마지막 비명 같았다. 긴 대치 끝에 그들은 천천히 옆으로 비켜섰다. 이나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묵직한 철문을 밀어젖혔다.
회의실 옆에 붙은 작은 대기실은 한산했다. 이나현은 구석에 놓인 낡은 인조가죽 소파에 몸을 던지듯 파묻었다. 소파는 그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끼익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엉덩이에 닿는 가죽의 감촉이 얼음처럼 차갑고 거칠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시는 여전히 신음하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해 늘 위태로워 보이던 후배 능력자, 민우였다. 그는 이나현의 몰골을 확인하자마자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낡은 구급상자와 쌉싸름한 향이 나는 약초 연고가 들려 있었다.
"선배, 미쳤어요?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예요. 상처 덧나면 책임질 거냐고요."
민우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겉옷을 걷어냈다. 흰 붕대 위로 번진 붉은 얼룩이 선명하게 시야를 파고들었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새 거즈를 꺼냈다. 연고의 진한 냄새가 대기실의 탁한 공기를 뚫고 올라와 코를 자극했다.
"좀 참아요. 마력 반응을 강제로 눌러주는 거라 처음엔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울 거예요."
연고가 상처에 닿는 순간, 이나현은 짧은 신음과 함께 몸을 떨었다. 소금물을 끼얹은 듯한 작열감이 옆구리를 관통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마력이 소진된 자리에 남은 공백을 날카로운 통증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 팔걸이를 손톱이 하얘질 정도로 꽉 쥐었다.
"이 정도 따가운 건 이제 일상이야. 그래도 기계보다는 사람 손이 낫네."
이나현은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우는 대답 대신 상처를 갈무리하는 데만 열중했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은은한 온기가 발작하던 통증을 조금씩 잠재웠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은 둔탁한 빛을 내며 대기실 바닥을 비스듬히 비추었다. 먼지가 흩날리는 그 빛줄기는 손에 닿지 않는 신기루처럼 보였다.
"선배, 저는 이제 이 모든 게... 그냥 사람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끝났으면 좋겠어요."
민우가 거즈를 붙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 이면에는 단단한 벽 같은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나현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그는 시선을 피한 채 조용히 약통을 정리해 상자에 담았다.
"선배 같은 사람, 다시는 나오면 안 되잖아요.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
이나현은 대답 대신 민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손등에 닿은 그의 옷감이 까칠하게 피부를 긁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사선에 서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미래를 꿈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균형을 잡는 조정자. 그것이 그녀가 바라는 새로운 삶의 궤적이었다. 하지만 민우의 눈빛에 담긴 묘한 거리감은 그녀의 가슴 속에 작은 불안의 씨앗을 심었다.
회의실 안은 이미 열기로 가득했다. 시민 대표들과 양 진영의 생존자들이 타원형 테이블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대치 중이었다. 이나현은 벽 쪽 구석진 자리에 소리 없이 자리를 잡았다. 프로젝터 팬이 돌아가는 웅웅거림이 실내의 무거운 긴장감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테이블 위에는 얇은 종이 뭉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나현은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초안 자료를 건네받았다. 종이를 넘길 때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건조하고 빳빳한 감촉이 낯설었다. 그녀의 눈은 익숙한 단어들을 찾아 빠르게 지면을 훑었다. '권능 분산', '의무적 봉인', '고위 능력자 등록 및 실시간 감시'.
글자들은 마치 그녀의 목을 조여오는 그물처럼 보였다. 조항 하나하나가 그녀가 평생을 바쳐 얻은 힘을 정밀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회의는 이미 결론을 향해 치닫는 듯했다. 시민 대표 중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전기 노이즈가 이나현의 귓가를 자극했다.
"우린 이나현 씨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대표의 말에 소란스럽던 회의실 안이 일순간 숙연해졌다. 이나현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칭찬은 고마웠지만, 뒤이어 올 말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다시는 한 사람의 도박에 도시의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겁니다. 시스템이 실패했기에 영웅이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이제는 시스템이 영웅을 대신해 작동해야 합니다."
옆자리의 다른 대표가 말을 받으며 플라스틱 물컵을 테이블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개인의 선의는 가변적입니다. 우리는 통제 가능한 상수를 원합니다. 강력한 힘은 그 자체로 재앙의 씨앗입니다. 그것이 설령 우리를 구원한 힘일지라도 말입니다."
이나현은 종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얇은 종이가 그녀의 손아귀 안에서 힘없이 구겨지며 바스락거렸다. 그들은 그녀를 영웅이라 칭송하면서도, 동시에 격리해야 할 잠재적 재앙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소외감이 차가운 바닷물처럼 그녀의 발끝부터 서서히 차올랐다.
단상 위로 민우가 올라갔다. 그는 이번 새 질서의 핵심 설계자로서 마이크 앞에 섰다. 슬라이드가 넘어가며 푸른 빛이 그의 얼굴과 회의실 벽면을 차갑게 물들였다. 화면에는 '개인 권능 상한선'이라는 제목의 그래프가 띄워졌다. 붉은 선이 급격하게 꺾이며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희생에 기대는 위태로운 구조를 유지해서는 안 됩니다."
민우의 목소리가 회의실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음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논리는 빈틈없이 치밀했다. 그는 권능 분산의 필요성과 집단 의결 없는 고위 주문 사용 금지 조항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고위 능력자의 등록제는 감시가 아니라 보호를 위한 장치입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지 않도록, 시스템이 그 힘을 억제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나현 선배 같은 분들이 겪었던 고통을 끝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나현은 눈을 감았다. 민우의 말속에는 자신을 향한 존경과 걱정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거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와 같은 존재가 다시 나타나 세상을 뒤흔드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 민우는 그 두려움을 논리라는 갑옷으로 무장시키고 있었다.
이나현의 손가락 관절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세우려 했던 '보이지 않는 조정자'라는 계획이 얼마나 순진한 망상이었는지 깨달았다. 시스템은 조정자를 원하지 않았다. 오직 규격에 맞는 부품만을 원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나현 씨의 의견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시민 대표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구석에 앉은 이나현에게 쏠렸다. 무거운 정적이 회의실을 지배했다. 이나현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발에 의지해 몸을 지탱하자 옆구리의 통증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는 마이크를 향해 한 걸음씩 천천히 발을 뗐다.
"완전한 봉쇄가 유일한 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나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마이크가 입 앞에 다가올 때 발생하는 미세한 하울링이 신경을 긁었다.
"시스템이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 앞에서, 때로는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구조적 견제는 필요하지만, 개인의 의지마저 봉쇄해서는 안 됩니다."
회의실 여기저기서 낮은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의자 등받이가 움직이는 삐걱임이 정적을 깼다. 시민 대표 중 한 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반박했다.
"그 '어쩔 수 없는 결단'이 지금까지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지 잊으셨습니까? 이나현 씨,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에게 다시 그런 짐을 지우고 싶지 않은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합의한 최고의 예우입니다."
민우 역시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덧붙였다.
"맞아요, 선배. 그래서 더 강한 장치가 필요한 거예요. 선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요. 선배는 이제 쉬셔야 해요."
이나현은 입을 다물었다. '쉬어야 한다'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는 문장의 정중한 변주였다. 그녀의 제안은 구조적 합의와 감정적 배려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그녀를 과거의 유물로 박제하려 했다. 영웅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이나현은 텅 빈 회의실에 홀로 남아 꺼져가는 프로젝터의 빛을 바라보았다. 푸른 빛이 점차 흐려지며 짙은 어둠이 방 안을 채웠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복도로 나섰다.
복도 끝에서 민우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서서 자신의 구두 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나현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목발 소리가 텅 빈 복도에 공허한 메아리를 남겼다.
"잘했어. 네 설명, 정말 설득력 있더라."
이나현이 먼저 말을 건넸다. 진심이었다. 비록 자신의 자리를 지우는 작업이었지만, 민우의 설계는 완벽에 가까웠다. 민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죄책감과 확신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선배, 화나셨어요?"
"아니. 그냥 조금 아플 뿐이야. 내 힘이, 그리고 내 존재가 앞으로 어떻게 취급될지 알게 됐으니까."
이나현은 민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는 시선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고 다시 바닥으로 떨구었다.
"제도상으로는... 선배의 힘도 일정 부분 봉인 대상이 될 거예요. 등록도 하셔야 하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선배를 믿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민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이나현의 팔을 잠깐 스치듯 잡았다. 손등을 타고 전해지는 미약한 온기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말의 결은 이미 어긋나 있었다. 믿음과 봉인.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복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겉돌았다.
"너희가 나를 존경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을 다시 만들지 않으려 한다는 거...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게. 근데 그 말이 왜 이렇게 아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이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형광등이 하나둘 꺼지며 복도에는 어둡고 밝은 얼룩이 생겨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청소 도구를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빠르게 발을 맞추고 있었다.
이나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는 아직 미약하게나마 마력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식어가는 재의 온기였다. 방금 통과된 조항들에 따르면, 이 작은 불씨조차 곧 봉인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이제 나는 어디까지 사라져야 하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때, 멀지 않은 회의실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의 집행을 알리는 차가운 선언이었다.
"제1차 권능 봉인 대상자 명단을 낭독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나현."
이나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자신의 이름이 텅 빈 복도를 가로질러 심장에 박혔다. 낙원이라 믿었던 미래는 차가운 감옥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어둠뿐인 복도 끝을 응시했다. 겨울의 마지막 숨결이 그녀의 뺨을 시리게 스치고 지나갔다.